[오병익칼럼] 오병익 전 충청북도단재교육연수원장·아동문학가

새해 들어 필립 로스의 자전적 에세이 '아버지의 유산' (정영목 옮김, 문학동네)을 다시 꺼내 읽었다. 어머니를 잃고 혼자 된 아버지께서 86세 되던 해 뇌종양 진단을 받는다. 고령이라서 수술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뇌종양 발견 전, 이미 로스는 자기를 빼고 형과 조카들에게만 상속하라고 누차 말씀 드린 바다. 그러나 유언장 검토 과정에서 진짜 자신 몫은 아예 빈 칸이란 걸 발견한 뒤 진단은 달라졌다. 재산을 탐해서가 아니라 '삶을 나누어 갖는다' 는 인간의 도리 아니었을까 싶다. 결국, 할아버지 유품인 면도용 컵 하나를 물려받게 돼 외려 맘 편했을 터, 낼 모레가 우리 고유 명절(설날)이다. 근 3년 코로나에 빼앗긴 탓인지 덕담조차 낯선 언어로 떨떠름하다.  
              
◇부모 자식 관계

시골 후배 중엔 매년 4~50일 손수 돌봐 가꾼 배추 400포기를 김장 담그는 게 90대 어머니의 40여년 행사다. 여러 남매에·고모·이모 등등을 챙기는 낙으로 한해를 기다리신다 했다. 후렴이 훨씬 웃긴다. "내년엔 절대 안 할 거다" 몇 번씩 선언하고도 김장 끝나기 무섭게 이듬해 종자 걱정을 하신단다. 하얀 머리 어머니 생전도 그러셨다. 속박이 무를 썰 땐 가을 인삼이라며 한 첨씩 넣어주시곤 "트림하면 약효 빠진다"던 원적 사랑을 이제야 깨닫는 바보다. 나이듦 이련가. 

칼 추위도 잊은 눈발을 딛고 온 설이라 그런지 어머니 손끝에서 뜬 청국장 냄새가 유독 짙게 밀려오는데 명절 분위기는 유난히 썰렁하다. 대출 이자 쯤 마이너스 통장으로 잠시 감당하면 넘어갈 줄 알았으나 빅스텝 금리에 실질소득이 줄면서 당장 거덜 직전 청춘, 미국 같은 선진국도 끼니 걱정(2022년11월, 성인의 11%)을 하는 상황(미국 통계청 자료)에서 부모라고 듣고 보는 게 왜 없겠는가.

"세끼 꼬박 챙겨 먹어. 기름 값 보낼 테니 보일러 좀…" 연민과 공감으로 뒤엉켜 밤새 목 놓아 울 일이다. 부모 자식 관계란 참으로 묘해서 감사, 반항, 관심 ,원망의 두께가 이렇듯 다르다. 그 깊이를 영원히 모를 수 있다. 시대에 가장 절실한 건 함께 사는 지혜다. 설날 한바탕 웃음소리부터 말개지면 거리 감각도 살아나겠지 설마….                                    

◇마음 트는 통로

필자가 법원 민사조정에 참여하면서 유류분(피상속인의 증여나 유증에 의해서도 침해되지 않는 상속재산 일정 부분)청구 분쟁을 자주 경험한 바, 형제 자매가 원고·피고로 나와 태반이 한  입으로 두 말하고 있다. '자기보다 더한 효자(부) 있으면 나와 보라'는 사설은 화수분, 원수도 그런 원수 못 봤다. 개시개비(皆是皆非;각각의 주장이 모두 옳으면서 그르기도 하다)에 담긴 갈등은 처연하다 못해 쓰려서 진행을 멈추기도 여러 번, '우애의 배신'으로 비약하게 된다. N분의 9면 뭘 하나. 영원불변할 것 같던 '물보다 진한 피' 종말과 무관치 않다. 부모 형제간 외로움이다. 아무리 분하고 억울해도 서로 조급하거나 징징거리지 말고 따뜻한 관계를 트는 통로야말로 진정한 명절 선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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