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광장] 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아들네 집에 갔다가 아파트 입구에서 발을 돌렸다. 아, 이사를 했다는 것을 깜빡하고 예전 아파트로 간 것이다. 그 후로도 몇 번 방향을 잘못 잡아 길을 돌아 나오고는 했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고 했던가. 고정 관념 때문에 적잖이 헷갈리는 중이다.

그동안 가장 많이 도전했던 자기 계발은 영어이다. 인터넷 강의도 들어보고, 광고에 혹해서 기계도 사고, 전화 영어도 해보고, 학원에 등록한 적도 여러 번이다. 그런데도 영어는 늘지 않았고, 시작했다 포기하기를 반복하면서 환갑을 훌쩍 넘겼다. 이제 더는 영어에 마음을 둘 나이가 아니라고 포기했을 때, 뉴욕에 갈 일이 있었다. 일행보다 먼저 가서 혼자 맨해튼 미술관을 돌아다니다가 다시 영어에 대한 꿈이 살아났다. 중고 서점에 들러서 고흐 화첩을 샀다. 그림 이외에는 한 문장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빈센트 반 고흐와 테오 반 고흐 형제의 편지를 읽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을 믿었다. 미국까지 가서 유일하게 쇼핑한 것이 고흐 화첩이었다.

코로나 이후 강의로 돈을 버는 일이 줄어 ‘시간’이 많아졌다. 영어를 포기한 이런저런 이유 중 가장 컸던 ‘시간’이 덜컥 주어진 것이다. 다시 영어를 배워보기로 했다. 선생님과 일대일로 매일 하루 한 시간 이상 만나서 말하기를 배웠다. 문법이 어려워 영어를 포기했기에 원장님의 입술을 따라 읽는, 말하기부터 하였다. 커피숍이나, 둘레길 등 상황에 따라 수업 방식을 맞추어 갔다. 덕분에 지루하지 않았고, 공부한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좋은 친구가 생긴 것 같았다. 더구나 코로나로 인해 학원 문을 닫아야만 하는 원장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말이 통하는 주제가 있으면 마음이 급해져서 한국말이 툭툭 튀어 나왔지만, 짧은 문장을 영어로 말하면서 꼬박 2년간 답답함을 견디어 냈다.

어느 정도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붙자 방송통신대학 영문과 2학년에 편입했다. 코로나가 시작되었던 2019년, 예순넷에 영어를 시작했을 때, 이생에서 꼭 영어를 극복하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이런저런 장치가 필요했다. 좋은 성적으로 영문과를 졸업 하고 싶어서 많은 시간을 들였다. 때로는 스트레스였고 때로는 힐링이 되었다.

2학년 때 ‘영미 산문’ 과목이 낙제여서 성적을 건져 올릴 수 있는 계절 학기 수업 신청을 했다.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바로 계절학기 시험 준비를 했다. 2년 전 보다 어휘가 많이 늘어서인지 다시 보니 ‘재미’도 있었다.

시험 당일, 공부한 만큼 아는 문제가 눈에 띄어서 차분히 문제를 풀고 시간이 많이 남아 또다시 반복하여 검토도 하였다. 그러다가 26번으로 문제가 넘어가서 깜짝 놀랐다. 계절수업은 50문제였다. 그동안 과목당 25문제만 풀었기에 50문제라고는 생각도 못 하고 느긋했다가 시험 종료 9분을 남겨놓고 나머지 25문제를 풀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번개처럼 문제를 읽고, 답을 찍으면서 입술이 탔다. 마지막 문제와 동시에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날 저녁까지 요동치는 가슴을 억제하기 어려웠다. 시험지였으면 당연히 뒷장이 보였겠지만, 태블릿 PC는 모든 정보를 자신이 보고, 판단해야 하는 것이었다. 월요일 아침 답안을 확인하니, 꽤 높은 점수가 나왔다. 더 기막힌 것은 천천히 한 것이나, 번개처럼 찍은 것이나 같은 점수가 나왔다.

시험은 공부를 열심히 한 덕분에 아는 문제가 많아 잘 넘어갔다고 치자. 그러나 살아온 만큼 무뎌진 필자의 고정 관념은 때로 엄청난 실패를 불러올지도 모를 일이다. 매번 새롭게 보는 눈이 이제는 정말 필요하다. 퇴근길, 세탁소를 향했는데 음악 한 곡 듣고 나서 멍하니 집으로 향하는 요즘 일상에, 50문제 사건은 ‘뼈 때리는 교육’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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