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생각하며] 황혜영 서원대 교수

이달 10일부터 6월 4일까지 200년 만에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요하네스 베르메르Vermeer(1632-1675) 걸작 서른 몇 점 중 28점을 모은 전시가 암스테르담 라익스뮤지엄Rijksmuseum에서 열린다.

베르메르 전시 소식을 들으니 지난해 6월 네덜란드에 있는 친구 주연이와 암스테르담, 델프트, 헤이그를 다니며 플랑드르 걸작들을 함께 감상한 추억이 떠오른다. 그동안 사진으로만 봐왔던 베르메르의 ‘델프트항의 풍경’, ‘진주귀걸이 소녀’, ‘우유 따르는 여인’ 같은 작품들도 바로 앞에 서서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의 작품은 몇몇 델프트 풍경을 담은 작품 말고는 주로 실내에 한두 명 인물이 등장하는 일상을 담고 있으며 특히 창으로 들어오는 빛을 섬세하게 표현한 경우가 많다. 베르메르의 ‘우유 따르는 여인’(1658-1660, 캔버스에 유채, 45.5×40.6cm)은 이번 베르메르 전시가 있는 라익스뮤지엄에 소장되어 있었다. 이 작품에도 창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선의 각도에 따라 창 바로 안쪽에 서서 항아리에 우유를 따르는 여인, 테이블 위의 빵과 항아리, 인물 뒤편의 벽과 창틀이 있는 벽에 걸린 바구니와 은빛 항아리 등에 점진적으로 번져가는 빛과 그림자의 콘트라스트와 색상의 그라데이션이 반영되어 있다.

보통 그의 실내화에는 거울이나 액자, 지도가 그림 속 또 다른 공간으로 장식된 경우가 많은데 ‘우유 따르는 여인’ 속 실내는 장식이 거의 없는 소박한 공간이다. 그렇지만 창틀 옆 벽 위쪽 작은 액자와 그 아래 바구니와 은빛항아리가 벽을 장식해주고 있다. 여인 뒤편 벽에도 못을 뺀 자국이 빈 벽면 위의 숨은 그림처럼 작은 파격을 주며 바닥과 마주하는 벽면 맨 아래쪽에는 연한 회색빛 정사각형 테두리 장식 타일이 이어져 있어 그림이나 지도, 거울과 같은 화려한 장식이 없는 실내 벽에 은근하고 절제된 장식을 준다. 무심히 우연인 듯 바닥에 놓인 작은 상자와 테이블 위의 빵과 바구니, 검은빛 항아리, 우유 항아리들은 일상 풍경의 주역들이다.

또 베르메르 작품 속 실내 풍경에는 거의 언제나 테이블보나 태피스트리, 커튼, 옷과 두건 같은 직물의 직조 무늬와 배색, 감촉이 생생하게 느껴지듯이 표현되어 있다. 이들 천의 생생한 직조와 질감의 표현에서는 현실 속 다양한 오브제의 촉감이 느껴지며 늘어지고 겹쳐진 직물의 주름에서는 바로크적 역동이 느껴진다.

‘우유를 따르는 여인’에는 화려한 문양의 태피스트리나 커튼은 아니지만 파란 테이블보와 테이블 위에서 아래로 내려진 천, 여인의 파란색 겹치마와 노란 웃옷 소매 주름이 있어 각이 진 테이블, 창과 방 가장자리의 고정적이고 직선적인 감각에 비정형적 곡선의 부드러움과 반복된 물결과 같은 주름의 리듬감과 생동감을 준다.

또 그림은 여인이 항아리의 손잡이를 잡고 우유를 따르는 순간의 우유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아 찰나를 영속으로 옮긴다. 이렇게 베르메르의 일상공간은 빛과 그림자, 색상의 대비, 직선과 곡선, 동과 정, 딱딱함과 부드러움이 함께 어우러진 매혹의 심미공간으로 탈바꿈된다.

 

▲ 요하네스 베르메르, '우유 따르는 여인'(1658-1660, 45.5×40.6cm, 라익스뮤지엄)
▲ 요하네스 베르메르, '우유 따르는 여인'(1658-1660, 45.5×40.6cm, 라익스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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