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웅칼럼] 김진웅 수필가

새해가 시작된 지 어느덧 두 달이 지나가고 있다. 휘영청 밝고 컸던 정월 대보름달도 그믐달을 거쳐 초승달로 바뀌고 있다. 세월의 빠름과 나이 듦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아직 마음은 젊은데 나이라는 숫자는 늘어가니 참된 나를 톺아보며 건강하고 보람된 나날이 되도록 힘써야 한다.

어떤 사람은 ‘이생망’이란 자조적인 말을 하는데 이 말을 맘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이생맘’이라 바꿨으면 한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란 말도 있지 않은가.

어느 신문을 보니 엘렌 랭어의 책 ‘늙는다는 착각’에는 ‘시간 거꾸로 돌리기 연구’라는 실험이 등장한다. 이것은 70~80대의 노인들을 20년 전의 시간으로 되돌려 일주일간 독립적으로 생활하도록 한 실험이다. 그 시절의 뉴스와 영화를 보고, 그때의 생활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다. 일주일 만에 놀라운 결과가 도출됐다. \

실험 전까지 글자가 보이지 않아 포기했던 독서나 관절이 아파서 하지 않았던 설거지와 청소는 물론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일까지 노인들은 스스로 그 모든 일을 해냈다. 청력, 기억력, 악력, 유연성, 자세, 걸음걸이 등까지 현저히 젊어진 것이다. 저자는 “노인들의 발목을 잡는 것은 신체가 아닌 신체적 한계를 믿는 사고방식”이라고 강조한다. ‘이생맘’이란 말처럼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아이를 늦게 낳은 여성이 아이를 일찍 낳은 여성보다 평균수명이 길다는데 왜 그럴까? 상대적으로 아이와 생활하며 젊고 건강한 신호에 더 자주 노출되기 때문이다. 연상연하 배우자의 경우도 그렇다. 우리가 움직일 때마다 무의식중에 내뱉는 “아이고, 허리야!” “이제 늙었나 봐.” 같은 말 역시 우리 뇌에 쌓여 고스란히 각인된다니…….

신체적인 노화와 퇴화는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슬기롭게 대처하자고 마음먹는다. 늘 먹던 것, 가던 곳만 갈 때가 아니라 새로운 음식을 먹으며 식도락도 즐기고, 가보지 않은 곳을 가면서 구부정해지려는 마음을 한 번 더 펴면서 핸드폰처럼 충전해야 하겠다.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가 노인층의 핵으로 진입하면서 노인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65세 이상의 노인 비율이 2018년 14.4%로 ‘고령 사회’에 들어선 데 이어 2025년 20.6%로 ‘초고령 사회’에 들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100세 이상 역시 1990년 459명에서 2020년 5,581명으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수명이 점점 길어져 ‘고령 국가’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고령화 시대를 사는 노인들에게 돈과 건강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젊은 층과 세대 갈등, 외로움과 고독, 가족·사회와 분리되는 소외 등을 관조하며 들여다보아야 할 시점이다.

지역과 이념 갈등에 이어 성(性) 갈등 문제가 대두되고 있지만, 정말 심각한 것은 세대 갈등일지도 모른다. 이건 가정이나 직장에서 지지고 볶으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서로 고개를 돌려 외면하면 세월이 지나도 그대로 균열이 남을 수 있는 갈등이다.

이제 노인 세대와 청년 세대는 사용 어휘는 물론 사고방식마저 달라진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뜨면 새로운 디지털 용어가 출현하는 요즈음, 젊은 세대가 습득해야 할 지식은 더이상 어른들의 경험이나 경륜에 있지 않다. ‘

후진국 시절 조부모와 개도국 시절 부모가 선진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키운다.’라는 말도 나온다. 스마트폰 작동법이나 신조어(新造語)의 뜻을 물어보는 쪽은 대개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불치하문(不恥下問)’이 아니라, 아랫사람에게 물어보지 않을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불하문(無不下問)’의 시대가 된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나이 들면서 부정적(否定的)인 모든 것은 빨리빨리 지우고 자신의 변해가는 모습을 편안하게 순리대로 받아드리며 중후(重厚)한 멋과 인품을 풍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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