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이향숙 수필가

바다는 잿빛으로 암울했다. 몇 차례 덧칠해져 얼룩진 그림 같다고나 할까. 그래선지 낙조는 일품이었다. 바다와 인접해 있는 농촌에서 자란 덕에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아직은 차가운 바람을 맞다가 더 어두워지기 전 저녁을 먹기로 했다.

겨울을 지내면서 삶은 빛깔을 잃고 한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너덜해진 날개는 제 기능을 하지 못했고 가속이 붙어 내리꽂히는 위기감은 감추기 어려웠다. 역병으로 온 인류가 고 속을 헤매다 겨우 숨구멍을 찾았다 싶을 즈음이었다. 한 나라의 지도자는 이기심으로 전쟁을 일으켰으며 지구촌은 한없이 피폐해지고 있다. 포탄이 쏟아지는 곳에 있지 않아 다행이지만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경제의 위기에 직면해 있음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지게 마련이다. 알게 모르게 한숨 쉬는 부모를 보며 안타까워하던 철든 아이들이 어미의 생일을 핑계 삼아 성화에 나선 여행이었다.

숙소를 찾아가기 전 밥집을 눈여겨보았었다. 남편은 이왕이면 시내의 유명한 집을 찾아가자 했다. 하지만 외떨어진 길가 식당의 간판이 마음을 놓아주지 않았다. 사진 속 생선구이가 입맛을 다시게 했다. 비수기라 한참 붐벼야 할 시간인데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다. 오래되었지만 비루하지 않은 내부는 주인장의 품성처럼 느껴졌다. 재즈 음악이 잔잔하게 흘러나오고 한쪽 벽면의 책꽂이는 철학책들이 꽂혀 있다. 말투나 움직임으로 보아 보통 내공의 사람들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참으로 멋있는 나이 듦이다.

음식이 나왔다. 젓갈, 나물, 순무깍두기, 옛날 사라다와 밥과 미역국, 어떻게 내 생일을 아는 것도 아닐 텐데 이런 우연이 있을까. 생선구이는 커다란 접시에 가득 담겼다. 가장자리엔 생화로 장식되어 대접받는 기분이 들었다. 생선은 화덕으로 구워져 담백한 맛이 일품이었다. 손맛으로 차려진 정갈함은 지친 우리에게 주는 위로이며 잘 견디었기에 내리는 상 같은 밥상이다.

따뜻함은 삼십여 년 전 어머니가 차려 주시던 이맘때의 밥상으로 옮겨갔다. 서울살이 시절 어머니가 그리워 무턱대고 고향 집을 찾은 적이 있었다. 텃밭에서 뛰어 들어오신 어머니는 손부터 씻으시고 부엌으로 들어가셨다. 온종일 기차에 버스를 갈아타느라 멀미했던 나는 아랫목에 누워 언 듯 잠이 들었었다. 뚝딱 한 상 차려 들고 들어 온 어머니는 내 이마에 손을 얹으셨다. 파릇한 봄나물에 된장찌개, 미역국 그리고 꼬들꼬들하게 반건조 된 박대와 임연수를 아궁이에 구워내셨다. 맨손으로 생선을 발라 숟가락에 올려 주신 것은 어머니의 사랑 표현이었다.

어머니를 떠오르게 한 밥상은 우리 같은 뜨내기손님들을 몇십 년 익은 단골 대하듯이 하는 주인장의 태도에서 말미암은 것일게다. 어찌되었던 고단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우리들은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하고 그것은 여행 중에 만난 어쩌면 여행자보다 더 고단할지도 모를 주인장들의 무심한 듯한 내어 줌이 아닐까.

길지 않은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낙조가 아름다웠던 해변과 어우러진 농촌의 풍경이 여운으로 남았다.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일을 하는 나는 일상에 감사하며 어머니의 밥상 같은 위로를 나누고 싶다. 그들에게도 다독임은 필요할 터이다.

저만치서 달려오고 있는 이는 잿빛의 암울한 겨울을 벗어던진 진정 따뜻한 봄날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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