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칼럼] 조동욱 충북도립대 교수

대학 선배님 중에 심재훈 선배님이라고 아주 부지런한 선배님이 계시다. 70이 넘으셨는데도 한마디로 ‘나이야~~가라’로 사시는 분이신데 얼마 전 나에게 카톡으로 다음과 같은 글소개하고자 한다.을 두 개 보내오셨다. ‘두 개의 바다’와 ‘숫자 18과 81의 차이점’. 먼저 ‘두 개의 바다’ 글을 소개한다.

◇두 개의 바다

슬픔의 땅, 팔레스타인에는 2개의 바다가 있습니다. 하나는 갈릴리해이고 하나는 사해입니다. 똑같이 요단강에서 흘러 들어가는 바다인데 갈릴리해는 물이 많고, 고기도 많으며, 강가엔 나무가 자라고, 새들이 노래하는 아름다운 생명의 바다입니다. 그런데 사해는 더럽고, 바다에 염분이 많으며, 고기도 살 수 없고, 새들도 오지 않고, 어떠한 생물도 살지 않는 죽음의 바다입니다. 똑같은 요단강 물줄기에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갈릴리바다와 사해는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요? 왜 하나는 생명이 숨 쉬는 바다가 되고, 하나는 이름 그대로 죽음의 바다가 되었을까요? 요단강 때문도 아니고, 토양 때문도 아니고, 기후 때문도 아닙니다. 그 이유는 다른 것에 있습니다.

갈릴리해는 강물을 받아들이지만 그것을 가두어 두지 않습니다. 한 방울이라도 들어오면 반드시 한 방울은 흘러나가게 합니다. 주는 것과 받는 것이 똑같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반면 사해는 들어온 강물을 절대 내어놓지 않습니다. 한 방울이라도 들어오면 자신의 것이라고 그것을 가져버리고 한 방울의 물도 내놓지 않는다고 합니다. 받기만 하고 주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생명의 바다와 죽은 바다. 받은 만큼 주는 바다와 받기만 하고 주지 않는 바다.

이 글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정치란 주권자인 국민들로부터 그 권한을 위임받은 것뿐인데 위임받았다는 생각은 없고 오로지 자기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로 인해 우리 민초들의 영혼은 사해가 되어 있다. 영혼뿐 아니라 여러 실생활면에서도 도저히 살 수가 없다.

◇이게 뭡니까?

또 하나의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한참 웃은 글이다. 제목은 ‘숫자 18과 81의 차이점’이다. 일본 여행 중에 누군가가 선술집에 걸어 둔 글(18 &81이란 글귀) 읽었습니다. 웃기면서도 의미심장한 글입니다. 사랑에 빠지는 18세, 욕탕에 빠지는 81세. 도로를 폭주하는 18세, 도로를 역주행하는 81세. 마음이 연약한 18세, 다리뼈가 연약한 81세. 두근거림이 안 멈추는 18세, 심장질환이 안 멈추는 81세. 사랑에 숨 막히는 18세, 떡 먹다 숨 막히는 81세. 학교 점수 걱정하는 18세, 혈당 당뇨 걱정하는 81세. 아무것도 철모르는 18세,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 81세. 자기를 찾겠다는 18세, 모두 찾아 나서는 81세. 재미난 글이고 틀린 말이 한 군데도 없다.

그런데 나는 요즘 숫자 18이 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정치, 경제, 민생 등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숫자 18이 절로 나온다. 50억이 50만원인 줄 아는 나라. 아빠 찬스가 어지간한 수준을 넘어서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으로 행해지는 나라. 이게 나라인가 싶다. 주여, 이 나라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