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백성혜 한국교원대 교수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의 리더였던 물리학자 오펜하이머의 제자이며, 상대성 이론으로 유명한 아인슈타인과 교류하면서 물리학계의 차세대 후계자로 지목받던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은 남다른 주장을 하면서 오랫동안 따돌림을 당하였다.

그의 주장은 과학을 어떤 방식으로 보느냐에 따라 하나의 이론을 받아들일 수 있고, 그 방식을 바꾸면 다른 이론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20세기의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라고 할 수 있는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은 서로 자연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이 전혀 다르고 통합될 수 없었기 때문에 이 두 이론을 모두 받아들이려면 봄의 생각을 따를 수밖에 없다.

데이비드 붐은 바라보는 방식을 바꿈으로써 새로운 이론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을 확장하여 관찰자와 관찰 대상은 서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자연의 모든 것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보았다. 우리는 지구 위에 있으므로 사과가 지구로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사과 속의 벌레라면 지구가 사과 쪽으로 떨어진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봄은 ‘달이 곧 사과이다.’라는 은유적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데이비드 봄이 오랫동안 교류했던 철학자 크리슈타무르티는 ‘관찰자가 곧 관찰 대상이다.’라고 말했다. 관찰자가 인식하는 방식에 따라 관찰 대상이 변하기 때문에 관찰자와 관찰 대상은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화가 나면 화를 내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내가 화를 내는 나를 관찰한다. 그런데 이러한 구분이 갈등을 일으키고, 갈등은 오히려 화를 더 부추긴다. 부모가 공부하라고 하면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더 공부하기 싫어지는 것과 같다. 이러한 갈등을 제거하면 화는 자연히 소멸한다.

자연 현상을 관찰하고 평가할 때 관찰자의 기억이나 감정과 같은 속성이 반영된다. 그래서 관찰자는 관찰되는 대상과 연결된다. 누군가의 행동을 보고, ‘저런 행동은 나쁜 행동이야.’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관찰자가 그 행동을 하는 사람과 자신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 즉, 자신의 기억이나 감정 때문에 그 사람의 행동을 그렇게 인식하는 것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뿐만 아니라 극도로 싫어하는 것조차 그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자신이 그와 동일함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한 깨달음을 얻을 때 우리는 분노, 질투, 공포, 무시와 같은 감정 자체를 소멸하게 된다.

인간의 고통과 불안은 과거에 대한 집착 때문이고, 이러한 집착을 미래로 투사하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낀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의식적 집착과 불안은 심적 고통의 뿌리가 된다. 그러나 과거는 지나가서 소멸하였고, 미래는 오지 않았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실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면 고통이 사라진다.

행복하기를 기대한다면, 막연한 불안을 일으키는 마음의 작용을 인식하고 버리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 강화시켜 온 사고의 습관을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현상을 내가 통제하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게 하고 싶다면 삶은 악몽이 될 것이다.

신에게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 좋다. 기도를 해서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기뻐하는 횟수보다 원하는 것을 신에게 요구하는 횟수가 훨씬 더 많고, 그 과정은 고통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고통을 만드는 과정의 어리석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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