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이향숙 수필가

도서관 로비에서였다. 초등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빌려볼 책을 정하려는 모양이다. 나도 무리 속으로 들어갔다. 선뜻 옛이야기 중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챙겼다.

옛날 사이좋은 오누이가 엄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엄마는 떡을 만들어 장에 내다 팔았는데 날이 어두워지자 남은 떡을 이고 집으로 향했다. 여러 고개를 넘어야 집으로 가는데 첫 고개를 넘다가 그만 호랑이를 만났다. 잡아 먹히지 않으려고 고개를 넘을 때마다 호랑이에게 떡을 주었다. 떡을 다 내어주고 마지막 고개에서 엄마는 결국 호랑이에게 잡아먹힌다.

엄마로 분장한 호랑이가 오누이가 있는 집으로 찾아온다. 지혜로운 오누이는 문을 열어주지 않고 뒷문으로 나가 커다란 나무에 올라간다. 뒤따르던 호랑이가 나무를 올라오려 하자 오라버니가 부엌에 있는 참기름을 바르면 오르기 쉽다고 한다. 손에 참기름을 듬뿍 바른 호랑이는 미끄러져서 오를 수 없게 된다. 그 모습을 보며 누이가 웃다가 도끼로 찍으며 올라오면 된다고 말한다. 호랑이는 도끼로 찍으며 성큼성큼 올라온다.

오누이는 울며 하늘에 빌기 시작했다. 그때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와 오누이는 줄을 잡고 하늘로 올라갔다. 코앞에서 오누이를 놓친 호랑이도 동아줄을 내려달라 빌었는데 썩은 동아줄이 내려온 줄도 모르고 줄을 잡고 매달렸다. 하늘로 올라가던 동아줄이 우두둑하고 끊겨 땅으로 떨어졌다. 하늘로 올라간 오라비는 달이 되고 누이는 해가 되었다. 오라비는 밤길을 비춰주고 누이는 햇살로 사람들을 보살펴 주었다. 호랑이가 떨어진 곳은 수수밭이었다. 호랑이가 흘린 피로 수수밭이 붉게 물들어 지금도 수수가 붉은색이란다.

책을 덮으며 이후의 이야기를 상상해 보았다. 오누이는 서로 그리워하지만 좀처럼 만날 수 없게 된다. 오라비가 온 힘을 다해 누이가 떠 있는 낮에 얼굴을 내밀 때도 있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 제대로 볼 수 없다. 손을 잡거나 다독여 준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장마로 비가 한없이 내리는 어느 여름날 해도 달도 모두 숨었다고 사람들은 믿게 된다.

하늘이 보기에 안쓰러워 오누이를 만나게 해주었다. 오랜만에 만난 오누이는 동아줄을 잡고 집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엄마를 위해 쌀을 불려 떡을 만들고 고갯마루에서 고수레한다. 오누이는 집으로 돌아와 수수밭을 서성이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돌을 발견하고 누이가 두 손으로 줍는다. 호랑이가 죽었을 때 뱃속에서 빠져나온 엄마가 돌에 깃들어 있었다. 돌을 누이가 소중하게 안으니 노랗게 빛난다. 이미 해와 달이 되었기에 지상에서 살 수 없게 된 오라비는 누이와 노란 돌이 된 어머니를 데리고 나무를 오르고 다시 동아줄을 잡아 하늘로 오른다. 하늘은 비가 멎어 청명하기 이를 데 없다. 엄마와 누이가 헤어지는 것이 안타까운 오라비는 스스로 해가 되고 누이는 달이 된다. 노랗게 반짝이는 엄마는 금성이 되어 어린 딸이 외롭지 않게 지켜주게 되었다.

해와 달과 금성이 된 세 사람은 땅을 지지대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살아 낼 수 있는 희망과 용기를 준다. 길을 잃은 이에게는 등대가 되어주기도 한다.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로 거듭나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옛이야기 속으로 들어간 아이들의 미래 모습이 이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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