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산책] 김법혜 스님·철학박사·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어느 순간 마약 문제는 이제 남의 나라 이야기만이 아니게 됐다. 70년대만 해도 마약은 외국에서나 하는 것, 조폭들이나, 그저 유명 가수나 배우 같은 셀럽들이 하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평범한 고등학생들도 마약에 손을 대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수리가 서늘하다.

우리나라도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다. 그동안은 마약이라는 용어가 좁은 의미에서의 마약, 즉 향정신성 의약품, 대마로 분류됐으나 이제는 총괄하는 의미로 혼용됐다. 과거에는 이 셋을 규제하는 법률이 적용됐으나 현재는 모두 마약류로 지칭해 마약 등 관리법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모두 규제하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마약 청정국은 커녕 ‘마약 신흥국’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쓸 판이 돼 충격이 크다.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은 마약 사범에 대한 법무부 ·경찰청의 강력한 합동 단속을 강력하게 지시했다. 이번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벌어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마약 음료 시음 사건을 비롯해 마약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자 공권력을 총동원한 '마약과의 전쟁'을 통해 뿌리를 뽑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우리나라는 마약 청정국 지위를 상실한 이후 마약 사범이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지난해 마약 사범은 전년보다 13.9% 증가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인터넷과 SNS를 통한 거래로 쉽게 마약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탓이다.

특히 10대 마약 사범은 10년 사이 13배 증가하는 등 청소년층의 마약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얼마 전엔 여중생이 마약 투약을 하다 실신해 어머니가 신고하는 사건도 있었다. 미성년자와 관련된 마약 범죄가 위험수위를 넘었다.

마약이 일상생활에 침투한 건 오래전의 일이지만 이젠 국내 최대의 학원가에까지 학생들을 대상으로 범죄 행각이 벌어졌다는 자체가 이미 우리 사회가 청소년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상실했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번 ‘필로폰 음료’ 사건은 마약과 전화 금융사기(보이스피싱)가 결합 돼 마약이 다양한 범죄로 진화한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이젠 국내의 학원가에까지 학생들을 대상으로 마약이 성행하고 있다는 자체가 이미 우리 사회가 청소년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상실했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마약 범죄 수사는 검수완박 법 시행으로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

검찰에 있던 마약 수사권이 축소되면서 현실 인식이 안이하기 짝이 없게 됐다. 다행히 시행령 개정으로 검찰 수사가 가능해져 검·경 합동수사가 이뤄지고 있기는 해 다행스럽다. 마약 범죄만큼은 검경이 한 몸이 돼 대응해야 한다.

정치권도 마약 단속을 더 이상 여야의 정치 공세 수단으로 삼지 말고 마약과의 전쟁에 적극적으로 호응해야 한다. 하지만 그간의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른 양 기관의 힘겨루기가 수사권 약화로 이어졌을 개연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검경의 공조 강화를 지시한 건 의미가 크다. 사회적 인식도 제고해야 한다. 마약을 상류층이나 연예인, 특권층이 즐기는 유흥 수단이라는 그릇된 사고방식을 바로잡고 특히 청소년들에게는 마약의 위험성을 알리는 예방교육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마약에 중독되면 재범률이 40%가량 되기 때문에 근본적 해결을 위해선 중독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현재 두 곳뿐인 국가 지정 마약 치료 병원도 늘려 적극적인 중독 치료를 해야 한다. 마약으로 인해 성인보다 최대 7배까지 뇌가 손상될 수 있는 청소년들에겐 각별한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

예방을 강화하고 마약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 마약 퇴치의 지름길이다. 마약은 개인의 삶을 망가뜨리는 동시에 사회를 병들게 한다. 마약이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뼈저리게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솜방망이 처벌 시스템도 손을 봐야 한다. 마약 단속에는 정파를 따질 일도 아니다. 정부와 국회 모두가 나서 마약 수사청 설립을 적극적으로 검토했으면 한다. 마약은 사람들의 삶을 치명적으로 망칠 수 있는 만큼 중 범죄로 다뤄야 한다.

‘살아서 파라다이스를 경험한다.'는 악마의 유혹에 빠져, 자기 삶을 송두리째 쓰레기통에 집어넣는 자의 남겨진 현실은 텅 빈 은행 잔고와 파괴된 인간관계, 그리고 피폐한 몸과 황폐한 영혼일 것이다. 살아서 극락을 짓는 이도, 살아서 지옥을 짓는 이도, 모두 자기 자신임을 마약 중독자들은 너무도 비싼 값을 치르고서야 알게 된다.

중국의 거대 마약상이었던 사형수는 말했다고 한다. “나에게 다시 한번 살아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저귀가 바람에 날리는 저 판잣집에서도 나는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마약에 관한 한 최고의 경계심은 언제라도 지나침이 없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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