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칼럼] 한옥자 수필가

집 앞에 호수가 있는 마을을 다녀왔다. 이따금 온다는 외지인의 집과 빈집 몇 채, 그리고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 집 한 채가 전부인 마을이다.

차를 세우고 동행한 사람이 이끄는 대로 언덕길을 올라가다가 사람 소리가 들리는 집으로 들어갔다. 주말마다 부모님 일을 거들러 온다는 아들 내외와 손주들이 마침 점심을 먹고 있었다. 대청호 수몰을 면한 덕분에 막다른 마을 신세가 되었어도 대를 이어 사는 부엌에서 만든 음식이었다.

부뚜막에는 무쇠솥을 비롯해 4개의 솥이 얹혀 있다. 솥의 크기나 숫자를 보아 예전에는 식솔이 많았을 거라고 짐작이 갔다. 천정이며 벽은 시커멓게 그을음이 앉았다. 한쪽 벽은 싱크대와 수도 설치를 해 우물이나 펌프 물을 푸러 다니지 않게 되었다고 안주인은 설명했다. 여간한 사람은 감히 음식을 만들겠다고 덤빌 수 없는 부엌이다.

남의 집 귀한 부엌살림을 기웃거리며 향수에 젖었다. 허락은 맡았으나 사진 몇 장을 찍고 나오면서 미안한 마음이 컸다. 불쑥 찾아온 낯선 이가 매우 불편했을 텐데, 내외는 꼭 다시 오라고 했다. 진심이 담긴 그들의 말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사람이 몹시 그리워서라고 생각했다.

여덟 자 열 자의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었다. 방이 좁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식이 둘 태어나도록 그 형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랬어도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 찬물을 뒤집어써 더운 여름을 이겨내야 하거나 비 오는 날에 빨래 말리는 일, 시간 맞춰 구공탄을 갈지 않아 번개탄을 피워 연탄불을 지펴야 하는 일. 모두 당연사로 여겼다.

7년 만에야 내 집을 장만했다. 네 식구가 각 방을 가졌고, 수시로 목욕했고, 베란다의 건조대에 빨래를 널었으며 번개탄을 피는 일도 없었다. 이후 두 번 더 집을 옮겨 다니면서 ‘이만하면 됐지!’, 라고 만족한다.

전세금과 매매가격의 차이가 적은 주택을 매입해 최고로 전세금을 받아 세를 놓고 가격이 상승하면 팔아 시세 차익을 얻는 갭투자라는 말이 생겼다. 한때 이 대열에 끼지 못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쯤으로 취급했다. 나 또한 그런 취급을 받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이고 가진 돈 없이 대출과 전세금만으로 그 대열에 뛰어들 만큼 무모한 용기는 없었다.

지난해 기준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천정부지로 오르던 부동산 가격이 하락으로 돌아섰다. 갭투자가 성행했던 2021년 전세 계약의 2년 만기가 도래하면서 이른바 ‘깡통주택’의 전세 피해자가 각지에서 속출했다. 모두 모래 위에 지은 집이다.

은행 대출과 전세금으로 산 집은 경매로 넘겨졌다. 최근 벌어진 인천 미추홀구 전세 사기 사건도 빚을 내서 집을 짓고, 이런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리고, 세입자를 속여 전세보증금을 받아 가로챈 사기 사건이다.

정부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이나 ‘전세자금대출’, ‘전세자금대출보증’ 같은 제도를 통해 서민의 주거 안정을 지원한다는 명분을 앞세웠다. 전문가들은 이런 전세 우대 정책이 집값을 망가뜨린 원흉이라며 이번 기회에 전세 제도를 없애자고 주장한다.

전세 사기 주택을 '노다지'로 부르며 먹잇감을 찾아 경매꾼들이 몰리고 있다고 한다. 전세보증금 몇천만 원이 전 재산이던 피해자들은 목숨을 버리거나 송두리째 삶이 흔들리는데 집의 양극화가 점점 심해진다.

그들이 대청호 막다른 마을의 허름한 집에 사는 부부의 삶보다 더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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