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은주 청주시 청원구 산업교통과 주무관

봄이다. 공기가 푸근하고 햇살이 따사롭다. 유독 추위를 많이 타는 나에게 봄은 반가운 계절이다. 지난주엔 집순이인 내가 큰맘 먹고 상당산성 너머 한옥마을에 있는 자연마당까지 다녀왔다. 아직은 선선한 산바람이 내려오고 있어 몸을 움츠렸지만 다른 이들은 모두 외투를 벗어 손에 들고 여기저기 좁은 산책길을 아이와, 애인과, 가족과 함께 가벼이 넘나들고 있었다. 그들 속에 묻혀 여기저기 내리쬐는 햇살을 받아내던 중에 어느 아주머니의 손에 달랑달랑 들려있는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냉이다. 봉투에 가득 차 있는 것은 냉이였다. 날이 풀리면 연꽃이며 핑크뮬리, 억새 등 예쁘고 멋있는 식물들이 가득한 곳이지만 아직은 이른 봄, 단장을 하기 전이라 마치 논인 듯 밭인 듯한 이곳의 냉이가 사방 자리 잡았다. 같이 온 동생과 ‘우리도 한번?’ 눈빛을 교환하곤 차 트렁크에 넣고 다니던 모종삽까지 꺼내와 채취를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움큼이 되고 뿌듯하다. 그날 저녁은 냉잇국이었다.

잊고 있었지만 이렇듯 봄이 되면 산에 들에는 봄나물들이 넘쳐났다. 최근 언론에서는 논밭이나 길 주변에 차량이 다니고 있어 이런 봄나물들이 중금속에 오염되어 있으니 섭취에 주의해야 한다고 하여 함부로 캐어 먹지 못하지만, 어린 시절엔 가족과 함께 가까운 전원으로 나들이를 가면 부모님은 종류도 다양한 봄나물을 가방 가득 꺾어 담곤 했다. 어려서부터 보고 먹어서인지 나도 이런 봄나물이 익숙하고 좋았다.

그중에 몇 가지를 꼽자면 앞서 말한 냉이처럼 된장국에서 자태를 뽐내는 달래가 있다. 머리카락처럼 하늘거리는 잎을 보고 달래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지만 이른 봄에 산과 들 어디에서나 무리지어 나서 한번 발견하면 큰 수확을 거둘 수 있다. 냉이와 모양은 비슷하지만 쌉싸름한 씀바귀도 있다. 어릴 때는 쓴맛에 고개를 저었지만 머리 굵어진 어른이 되고나니 그 쓴맛이 좋아진다. 두릅은 살짝 데쳐 숙회로 먹으면 그 독특한 향과 식감이 과연 일미이다. 혹자는 두릅보다는 엄나무순, 오가피 순이 으뜸이라고 한다.

모두 봄이 되면 나무에서 나는 새순을 꺾어 먹는 것인데 진한 맛과 향으로 아는 사람만 찾는다는 귀한 봄나물이다. 나뭇가지에서 움을 틔어나오는 힘있는 새순이라서 그런지 원기 회복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쌈채소로 활용되는 곰취도 있다. 하트모양의 곰취는 곰의 발자국을 닮았다고 하여 혹은 산속 곰들이 뜯어먹는 풀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특유의 향과 떫은 듯 쌉싸름한 맛이 매력적이다.

그 시절 먹을 것이 궁하던 때에는 이런 것들이 겨우 끼니를 때워주는 구황작물 옆에서 입맛을 돋워주는 조력자가 아니었겠는가. 재배하지 않아도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면 언 땅을 녹이고 나오는 봄나물들이 있어 된장만 넣고 쑤어낸 멀건 죽에 향기를 더해주었을 것이다.

이런 봄나물이 별미가 되어버린 지금 하우스에서 온도, 습도 맞춰 곱게 자란 봄나물들은 그럴 필요가 없어서인지 향이 짙지 않다. 그럼에도 시설에서 재배된 이것들은 서구화된 식생활에 균형을 맞춰주고, 사라질지도 모를 오래된 우리 먹거리를 살려내며, 위축되고 있는 농가에 새로운 생산력을 심어주고 있는 귀한 작물이다. 예전 산과 들에서 봄나물 캐던 감성은 점차 사라지고 있지만 언제 어디서나 만나볼 수 있는 우리 작물들로 지속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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