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칼럼] 오병익 충청북도교육삼락회장· 아동문학가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은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강, 황인숙)의 시가 스승의 날 러브라인에 들어온다. 교권 실종 메시지가 심상치 않다. 사(師) 부(父) 제(弟)는 그 다음이다. 우리교육의 건강 지표들은 더욱 참담하다.

강의 중 교직 선택 학생들에게 물었다. '어떤 교사를 작정하느냐?'고.  "조급하지 않은 사람 중심, 문제 해법을 함께 추구하는, 언제 어디서든 너그러운" 등등 주문  외듯 달달 쏟아냈다. 끄트머리 순서 쯤에 진짜가 나타났다. "반면교사(反面敎師)죠" 강의실은 모처럼 박장대소했다. '다른 사람 또는 사물의 부정적 측면에서 가르침을 얻는다'는 둔중한 의미를 담았으니 당연 히트였다. 

◇변화의 경고

수업 훼방 학생을 신고했다가 살해 협박당한 선생님, 학폭 관련하여 면담 중인 학생이 교사 폭행 후 학교장에게까지 흉기를 휘둘렀다는 소식이다.

한국교총 발표에 따르면 교직 생활의 어려움으로 '문제 행동 및 부적응 학생 생활 지도(24.6%), 학부모 민원과 관계 유지'(22.1%)를 꼽았다. 지난 한 해 2,269건(모욕·명예훼손 57.3%, 상해·폭행11.0%, 학부모 부당 간섭 17.0%)의 '교권 재앙' 수준 행패가 현장을 괴롭혔다. 아무리 한 가닥 하는 선생님도 담임 기피를 할 만큼 교학상장이 헝클어졌다. 그렇다고 덜컥 먼저 떠벌리면 수습은 더 꼬이고 헷갈린다.

학생의 수업 방해나 문제행동 발생 시, 즉각적인 지도·조치에 매뉴얼부터 챙기기란 득보다 실이 많다. 대부분 학교 나름 차분한 대응에도 불구 '학생 인권침해' 운운하며 멱살 잡히기 일쑤다. 그런데도 학폭 처리 늦는 학교장은 신고(국회 교육위원회 개정안 발의)하라니 도통 몽니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학교 밖에서 죄다 개입하면 오히려 시시콜콜한 사안마저 끼어들 또 다른 빌미로 불거질 수 있다.

그나저나 지난해 13개 교대와 기타 대학 초등교육과에서 수시 정원을 못 채워 정시모집(502명)으로 충원됐고 교원 임용고시 경쟁률조차 하락세였다. 양질의 교육에 균열이 생겼다. 취학 아동은 계속 감소 추세인데 어물쩍 대응을 어쩔까. 학생인권조례·교원지위법 역시 수명을 다했다. 아뿔사, 변화의 경고마저 무시한 채 여전히 케케묵은 틀 안에서 허우적거리다 지친다는 반향을 어찌 몇 줄 글에 가타부타하랴. 

 ◇사도(師道)여 영원 하라

우리 교육은 거의 맨몸(선생님) 하나에 검정 칠판과 분필로 구축한 성공 스토리니 기적에 가깝다. 사람 만들고 또 사람이 된다는 것은 기다림의 풀무질과 같다. 이걸 비껴가면 어떤 개혁도 공허할 수밖에 없다. '시끄러운 아이, 장난 심한 아이, 유독 배 아픈 아이, 염장 지르는 아이…'  개별 에너지요 미래 성장 동력이다. 아릴수록 맞장구를 치자. 함께 시시덕거리며 훑어가는 동료로서 가르침과 배움의 허기를 넘나들 선생님들께 '감사' 말고 딱히 어루만지고 살피고 고마움을 전할 다른 표현을 못해 아쉽다. 우린 일 년 365일이 스승의 날 아닌가.  '으샤으샤' 사도(師道)여 영원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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