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윤창국 청주시농업기술센터 연구개발과 연구기획팀장 

우리는 익숙한 것에 따라 행동하고 그것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청렴하지 못한 행동들을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랑비 옷 젖듯 당연시되어 왔기 때문이다. 

최근 필자는 우연히 학창시절 보았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라는 영화를 다시 보았다. 이 영화는 부정부패로 물들어 있던 1950년대 자유당 정권 말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서울의 유명한 한 학원에서 강사를 하고 있는 한병태는 어릴 적 시골학교로 전학을 갔을 때 담임 선생님이셨던 최 선생님의 부고 소식에 장례식장에 조문을 갔다가 친구와 만나 술 한 잔 하면서 엄석대라는 인물을 거론하며 과거로의 회상을 시작한다. 

엄석대는 초등학교 시절 반에서 최 선생님의 권력을 위임받아 친구들을 통솔하고 지휘권을 행사하는 급장이다. 어린 한병태는 엄석대의 세상을 보면서 잘못되었다는 것을 울부짖지만 오히려 친구들은 한병태를 비난한다. 엄석대의 세상에서 한병태는 회유되고 굴복하면서 권력의 맛을 보게 되며 모든 것들을 묵인하게 된다.

그러던 중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는 시기 새로운 김 선생님이 부임하게 되면서 엄석대의 세상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동안 자행되어왔던 잘못된 관행과 습관들을 바로잡으면서 학생들은 엄석대의 비리를 하나둘씩 폭로하지만 한병태는 오히려 엄석대를 감싸준다. 그리곤 엄석대는 자기의 세상 교실에 불을 지르며 사라진다. 또한 공명정대할 줄만 알았던 김 선생님은 국회의원 뱃지를 달고 나타나 권력의 맛에 동화된 한병태와 같은 인물이 되고 만다. 

급장이라는 권위를 이용해 점심시간에 엄석대에게 물과 먹을 것을 갖다 바쳐야 했던 친구들의 괴로움, 시험지를 바꿔 성적을 올려줘야 했던 친구들의 심적고통, 엄석대의 말을 듣지 않으면 왕따를 당하거나 매질을 당해야 했던 친구들의 공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저 그의 말을 따라야 했던 것이다. 

요즘 뉴스를 보면 부정청탁에 의한 뇌물수수로 도피한 공무원, 부모찬스를 이용한 부정입학, 취업 등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엄석대의 세상이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개구리는 변온동물이라 뜨거운 물을 부으면 바로 튀어 나오지만 물을 서서히 끓이면 뜨거운 줄 모르고 죽고 만다고 한다. 잘못된 익숙함으로 엄석대의 세상에서 아이들은 편안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권력과 권위에 짓눌린 거짓 편안함이었을 것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한병태와 김 선생님은 처음엔 정의와 공정을 부르짖으며 청렴을 강조하고 있지만 결국 냄비 속 개구리처럼 환경에 적응하고 변질되고 만다. 

청탁금지법이 2016년 9월 28일 시행된 이후 7년이 다가오는 지금 우리 공직사회는 변화하고 있지만 엄석대가 느끼는 권위적 익숙함과 아이들이 느꼈던 관행적 익숙함이 아직 혼재되어 있는 듯하다. 현재 나의 익숙함이 청렴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필자는 공직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청렴한 공무원이 되리라 다짐했다. 20년차 공무원이 된 지금 이 영화를 다시 보며 한병태와 김 선생님처럼 청렴한 마음이 변질되지 않았나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여러분들의 익숙함은 청렴이라는 단어와 같이 걷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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