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곽의영 전 충청대 교수 

사노라면 예서 제서 '세월이 참 빠르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나이 지긋한 시니어들은 물론 심지어 젊은이들도 이런 이야길 한다. 

무릇 세월(歲月)이란, '시간이 흘러 쌓여감'을 의미한다. 

이에 시간을 먼저 살펴본다. 

시간에 대한 연구는 오랜 역사를 통해 확장되고 발전되어 왔다. 역사 초기에는 사람들이 하루(밤과 낮), 한 해(계절)와 같은 변화의 현상을 시간이라 하였으며, 이후 과학이나 철학과 같은 학문에서, 시간의 본질(本質)에 대해 보다 정교(精巧)하게 접근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을 거쳐, 오늘날엔 '우리의 의지나 존재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객관적 실재(實在)'를 시간(時間)으로 이해한다. 

그러면 우리는 왜 시간을 다르게 느끼는가? 

이는 인간과 같은 생명의 몸속에 '생체 시계'가 있기 때문이다. 

생체 시계(生體時計)란 '동식물의 생리(生理), 대사(代謝), 노화(老化) 등의 주기적(週期的) 리듬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시간에 따라 생체 리듬을 주관하는 메커니즘이다. 

이로 인해, 재미나 흥미 있는 일에 몰두하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애타게 기다릴 땐,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 

더구나 나이가 들수록, 생물학적 신경 전달 물질의 생성과 작용이 더뎌지고, 뇌(腦)의 신경 회로(神經回路)가 약해져, 인지 능력(認知能力)이 감소된다. 그러니 시간이 예전보다 빠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모름지기 우리는 시간에 갇혀 살다 가는 존재이다. 때문에 예로부터 현자(賢者)들은 이에 관심을 두고 시간의 본질을 탐구하였다. 

그 중의 하나가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시간 개념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을 '크로노스(Chronos)'라 했다. 1년 365일, 하루 24시간과 같이, 수치(數値)를 통해 정량화(定量化)된 시간이 그런 시간이다. 

한편 카이로스(Kairos)란 '특정 의미가 부여된  주관적 시간'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의도적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만들어 가는 시간'으로, 다소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이해가 요구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시간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이를 위해서는 우선 '시간 조망'을 잘 헤아려야 한다. 시간 조망(時間眺望:time perspective)이란 '시간을 대하는 마음과 인식(認識)의 방식'으로, 이에 의해 생각과 감정, 행동이 결정된다. 

이로써 크로노스의 시간에 길들여져, 별 생각과 변화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거나, 아니면  의도적(意圖的)으로 무언가 가치(價値)가 담긴, 의미(意味) 있는 일을 하면서, 카이로스의 시간을 보낸다. 

흔히 사람들은 지난날을 돌아보면서, 그렇게 멀리 보이던 세월이, 저만큼 멀리 흘러갔다고 아쉬워하거나 자탄(自歎)한다.    

그러면서 대중가요 '고장난 벽시계'를 힘주어 부르기도 한다. 이렇게 말이다.  

"세월아 너는 어찌 돌아도 보지 않느냐/ 나를 속인 사람보다 니가 더욱 야속 하더라/ 한 두 번 사랑 땜에 울고 났더니 저만큼 가버린 세월/고장 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저 세월은 고장도 없네…"!

정말 이 노래야말로 되돌릴 수 없는 세월의 아쉬움을, 너무나 절절하게 은유(隱喩)하고 있다. 

아무튼 시간은 흐르는 강물 같아서 막을 수도 없고 되돌릴 수도 없다. 결국 시간은 내가 만들고 보내는 것으로,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다. 모쪼록 시간을 스스로 지배하는 영혼(靈魂)으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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