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생각하며] 황혜영 서원대 교수

2020년 초반부터 코로나 팬더믹으로 2년 넘게 시행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다른 사람들과 직접 만나 접촉하는 것을 피해 비대면 방식으로 소통하는 언택트 트랜드를 순식간에 일상 깊숙이 들여놓았다. 하지만 코로나 전에도 이미 대면 대인 관계에 대한 피로감을 표명하고 자기만의 영역을 추구하는 경향이 많이 나타났다. 2018년 소비자 트랜드 10대 키워드 중 언택트나 케렌시아가 이러한 경향을 대변한다.

언택트(untact)는 콘택트(contact)의 대립개념으로 직접 사람과 만나는 대신 비대면으로 대하는 방식이다. 케렌시아(Querencia)는 투우 소가 투우장에 나가기 전 잠시 쉴 수 있도록 마련된 곳을 자신만의 공간으로 삼아 마지막 에너지를 모으는 것에서 유래한 스페인어로 사람들이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는 피난처나 안식처 혹은 귀소본능을 뜻한다. 언택트나 케렌시아가 대변하는 트랜드는 대인 관계에 지친 사람들이 자신만의 고유한 공간이나 영역을 마련하여 휴식과 재충전을 추구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급속한 시대 변화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고 삶의 균형을 잡아가는 것은 중요하다. 평소 우리가 생산적인 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은 많이 하지만 어떻게 우리를 재충전하고 어떻게 내 자아를 돌보고 나에게 건강한 휴식을 줄 것인가는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는 것 같다. 스스로를 착취하며 무한대로 소진되는 피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자기만의 공간에서 숨을 고르고 휴식을 취하며 다시 세상으로 나가 다른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도록 자기를 돌보고 재충전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케렌시아는 우선 편안히 쉴 수 있는 방이나 은은한 분위기의 카페, 동네 산책길처럼 안식과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하지만 케렌시아에는 물리적인 장소뿐만 아니라 숨 가쁜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와 힐링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취미나 활동도 포함되며 sns나 다양한 가상공간에서 자신만의 휴식 시간을 보내는 사이버상의 휴식도 케렌시아가 될 수 있다. 케렌시아는 궁극적으로 더 건강하게 세상과 마주하여 대하기 위해 잠시 멈추고 나를 돌보는 물러남 자체라 할 수 있다.

수업에서도 학생들과 케렌시아 테마 기사를 읽고 나만의 케렌시아라는 제목으로 한 단락 쓰기를 해본 적이 있다. 학생들은 푹신한 소파와 거실, 자기만의 침대방, 친구와의 산책, 퍼즐하기, 여행에서 본 바닷가 등 일상 속 자기만의 케렌시아를 소개해주었다.

활동 후에 학생들은 케렌시아 개념을 배우고 나만의 케렌시아를 떠올려보면서 내가 어떤 것을 할 때 가장 행복할까 돌아보고 실천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집 안 인테리어를 꾸미면서 내가 원하는 분위기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SNS를 통해 듣고 싶었던 말들을 찾아보고,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의 피로를 푸는 것 모두 케렌시아가 될 수 있음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또 케렌시아란 잠시 주변의 일들을 놓아두고, 휴식을 충분히 취한 후 놓아뒀던 일들을 다시 들 수 있는 힘을 갖게 해주는 시간(또는 공간)임을 느꼈다고 소감을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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