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백성혜 한국교원대 교수

필자는 이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인 한병철 교수의 ‘행복에 관하여’라는 유튜브 영상을 보기 전까지 기쁨과 행복을 크게 구분하지 않았다. 맛있는 것을 먹거나 생각지 않았던 돈이 생기면 “행복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가 설명한 기준에 의하면 맛있는 것을 먹거나 돈이 생기는 것은 잠시 ‘기쁜 것’이지 ‘행복한 것’은 아니다. 기쁨은 잠시 머물다 지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맛있는 음식이나 돈은 그 순간만 기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행복은 손을 통해서 들어온다. 행복은 수작업이다”라고 말했다. 그 의미를 잘못 해석한 사회자가 “우리 같은 학자들은 손을 잘 쓰지 않고 머리만 쓰는 것 같지만, 요즈음 수작업으로 좋은 책 혹은 성경이나 불경을 필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것을 통해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하자, 그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단순히 남의 글을 베끼는 수작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인간은 손을 쓸 때 행복감을 느낀다”라는 것의 사례로 정원 가꾸기를 들었다. 그는 삽을 들고 땅을 파며 거친 뿌리와 어두운 흙이 드러날 때 낯선 세계가 열렸다고 했다. 단순한 필사는 이러한 낯섦과 저항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그가 설명하는 ‘수작업’이 아닌 것이다.

그는 행복이 낯선 것이라고 했다. 저항 혹은 낯선 대상과 대립 상태에서 애써 그 저항을 받아들일 때 새로운 세상이 발견되면서 행복이 온다고 했다, 그렇다면 자기 생각으로 꽉 차서 다른 사람의 다름을 용납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다. 그는 현대 사회가 이러한 저항을 모두 제거했기 때문에 행복이 사라지고 “너는 할 수 있어”라는 무한 긍정으로부터 발생하는 자기 착취로 인해 현대의 질병인 우울증이나 과잉행동장애가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그를 유명한 철학자로 만들어 준 책 ‘피로사회’에도 잘 나와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성과사회에서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라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자기를 채찍질한다는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강의 마지막에 청중의 질문을 받았는데, 질문 대부분은 그의 강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생긴 것인지 그의 대답은 “이미 말을 했는데?”였다. 하지만 “정보와 지식의 차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의미 있었다. “정보는 순간적인 자극으로 왔다가 사라지며, 우리는 정보 속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지식은 김치처럼 오랫동안 익혀서 나오는 것이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포함하는 것이다”

우리가 정보에 집착하는 한 지식을 누릴 수 없고, 이것은 잠시의 기쁨은 누릴 수 있지만 진정한 행복은 얻지 못하는 상황을 만든다. 맛있는 음식이 나왔을 때 스마트폰으로 인증사진을 찍기 바쁜 것은 음식을 정보로 만들어버리는 행위이다. 일상의 삶도 사진으로 찍어서 SNS에 올린다면 삶을 정보화하는 것이다. 그런 순간적인 자극에 매몰된다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시간을 버리게 될 것이다.

마무리 과정에서 사회자가 겸손한 태도로 “저는 철학을 전공한 사람이지 철학자는 아닙니다”라고 말하자, 철학을 하지 않고 철학을 전공해서 먹고사는 사람은 용기가 없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나는 교육학자인가, 아니면 교육학을 전공하여 파편적인 정보를 전달하면서 먹고 사는 교육학 전공자인가? 고민하면서 이러한 새로운 생각에의 부딪힘이 나에게 주는 깊은 행복을 누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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