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아침에] 김영애 수필가

여든일곱의 우리 엄마는 늙지 않으신다. 아니 점점 더 젊어지는 모습으로 보일 때가 있다. 딸들 셋이서 나들이를 모시고 다닐 때면 딸들보다 엄마가 더 곱고 멋쟁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들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실제로 엄마는 아직 곱고 단정하시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나도 이십년 후에 엄마만큼 건강하고 곱게 나이 들어갈 수 있을까 하고 생각을 하게 된다. 엄마의 그런 모습이 늘 고맙고 감사하다.

요즘 우리 엄마는 손주 또래의 젊은 트로트 가수들에게 푹 빠져서 지내신다. 방송국마다 트로트 오디션 프로가 나오는 요일과 시간을 꿰뚫고 계신다. 즐기시는 차원을 넘어서 엄마가 트로트를 듣고 평가하는 수준은 전문가에 가까웠다. 엄마의 판단은 늘 적중했다. 실력 있는 가수와 전도 유망한 가수를 정확히 가려내시는 수준에 도달하셨다. 오디션 프로가 방송되는 날 밤이면 한밤중에도 수시로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가수가 혼신을 다해서 노래를 부르고 나면 그 감동을 혼자서 느끼시기에 마음이 벅차신 듯 참 노래 잘한다고 칭찬도 하시고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가수는 자식의 일처럼 안타까워하셨다.

딸 셋 중에 나와 음악적 소통이 잘되신다고 생각하시는듯했다. 둘째와 막내는 아직 젊어서 그런지 트로트에 관심이 없다. 둘째와 내가 크로스오버 가수 김호중을 좋아해서 멀리 공연을 보러 다니는 것을 못마땅해하시던 엄마셨었다. 그러던 엄마에게도 드디어 좋아하는 젊은 가수가 생겼다. 엄마께 “손태진 가수의 어디가 좋은데요?” 하고 물으면 서슴없이 잘생기고 노래를 품위 있게 잘하고 똑똑하고 점잖은 청년이라서 좋다고 하신다. 맞다! 김호중 성악가가 그랬듯이 엄마의 평가처럼 손태진 성악가도 우리나라 대중음악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별의 탄생이었다.

아이돌 가수의 판이었던 가요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새로운 팬덤 문화가 시작되었다. 엄마와 할머니 부대 팬덤이 몰려왔다. 그 팬덤은 철옹성같이 탄탄하다. 시간도 많고 돈도 있고 그 옛날 자식을 키웠던 치맛바람의 저력이 있다. 자식은 품을 떠났고 나이든 남편은 그저 든든한 동거인일 뿐이다. 누가 이토록 기쁨과 위로를 줄까! 때로는 손주로 아들로 아니 연인 하나를 열열히 가슴에 품고 내 가수를 위하여 어디든 달려간다. 자식들 또한 생기가 돌고 행복해하는 엄마를 위해 티켓팅 전쟁을 수시로 치러야 한다. 그래야 효자 효녀의 반열에 들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좋아하는 손태진 가수가 나오는 트로트 청주 공연 티켓 두장을 애매해 놓고 손꼽아 기다렸다. 소프트 아이스크림 처럼 달콤한 뮤지컬 배우 출신 에녹 가수도 나온다. 공연이 열리던 날 엄마는 곱게 꽃단장을 하고 나오셨다. 공연이 화려하고 웅장하게 시작되자 엄마는 어깨를 들썩이시면서 흥에 겨워 박수를 멈추지 않으셨다. 사대부 집안 여인처럼 품위와 기품이 넘치시던 우리 엄마에게도 저런 흥과 신명이 있었구나! 즐거워하시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덩달아 행복해졌다. 연예인을 그것도 좋아하는 손태진 가수를 직접 실물로 보시니 소녀가 되신 듯 즐거워하셨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응원봉이라도 하나 사드릴걸 싶었다.

절정에 다다르고 어떤 가수가 ‘청춘을 돌려다오’를 부르니까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객석에서는 일제히 떼창을 하고 있었다. 나이든 나와 늙으신 우리 엄마도 청춘을 돌려달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닳고 닳은 무릎 관절로 공연장 계단을 힘들게 오르시는 노부모님을 부축하는 자녀들의 모습이 훈훈하다. 공연장 밖으로 나온 엄마와 할머니들은 행복한 표정으로 상기되어있었다. 짧았지만 긴 여행을 마치고 오는 부모를 기다리는 공항처럼 저마다 목을 빼고 내 부모를 찾는 젊은 자식들로 붐빈다. 그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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