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칼럼] 오병익 충청북도교육삼락회장·아동문학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영웅 장미란 탄생 후 필자가 쓴 칼럼을 뒤적거렸다. 유통기한이 지났나 싶었는데 정확히 15년 뒤, 39세 나이로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부름을 받았다는 뉴스에 일견 옛 친구를 만난 듯 설렘 때문이다.

역도는 들어 올린 바벨 무게에 따라 판정하며 우리나라에선 흔히 '역기(力技)'라 불렀다. '여자 헤라클라스 장미란'은 326Kg(인상140Kg·용상186Kg)을 제패한 한국 여자 역도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다. "운동을 해본 사람들은 안다. 국가대표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공부로 치면 아마 서울대 단과대 수석 정도의 확률(2023.4.25. 국민일보)" 당시 박 선수의 인터뷰 중 '어렸을 땐 숨기고 싶었지만 빨리 시작 못한 게 아쉽다'고 활자로 박혀있다. 검색창엔 덩치만큼 과묵해 보여도 말문을 트면 그만큼 재미있다'는 선플이 넘쳤다.

◇인간 승리

스물아홉 되도록 역도 사랑은 남달랐다. 다시 4년 뒤, 런던올림픽에서 쇳덩어리를 든 장 선수는 비록 마지막 시기에 실패하였으나 금메달을 목에 걸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속이지 않았다. 마침내 여성으로는  2018년  국가대표 최윤희 수영선수 이후 두 번째,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에 임명됐다. 4류 정치를 상계해준 가뭄 끝 빗줄기 같았다.

충청북도교육삼락회(퇴직교원단체)를 비롯 국민들이 전폭 환영한 반면, '청년 역할론 어쩌구 저쩌구' 중언부언하던 일부 국회의원 어조는 '내로남불' 곤조(根性)처럼 표독스러웠다. "역도 선수가 뭘 아느냐"며 턱없이 긁어댔다. 무슨 시그널일까. '툭하면 눈 부라리며 깔아뭉갤 나를 똑바로 기억하라'다. 하기야 태권 유단자도 골목대장 앞에서 쪽 못 쓰는 경우가 흔하니 고무적일 수 있다. 1983년 10월 9일생 차관은 취임 대꾸를 했다. '염려하신 이상으로 부응하겠습니다……' 금메달에 성공하던 날도 그랬다. 정책 변곡점을 기대할 만하다. 


◇'으라차차 Jang' 버전 

정부 부처의 짝퉁 관료 몇몇 때문에 내각이 싸잡아 욕먹고 고개를 나락처럼 떨구기 일쑤다. 구성원들 지체나 무사안일은 곧잘 탓하면서 자신을 읽기엔 느슨하다. 공직자가 특히 분신처럼 챙겨야 할 것은, '왜 이 자리에 있는지. 누구를 위해 있는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지' 정체성과 공사(公私)의 엄격한 구분이다. 선수와 차관의 길은 하늘과 땅 차다. 채찍으로 계속 달릴 순 없다. 무조건 이겨야하는 욕심도 벗어야한다. 상대 견해를 존중하라. 결코 틀렸다고 단정 말라. 역지사지(易地思之)'로 다가서라.

'잘 들었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럴 수 있겠네요.' 지금껏 혼자 들어 올린 바벨보다 훨씬 만만치 않은 중력까지 말해 무엇 하랴. '차관님 차관님' 호칭 놀음에 취해 애늙은이로 휜 사례는 숱하다. 장미란이라고 봐주거나 옭아맬 리 없다. 문화·체육·관광 책무를 두루두루 섭렵하여 부처 내 의견 감정 생각 처지 조율 등, 덩치만큼 큰 국민 당부를 거듭 전한다. 자신을 지켜 줄 배후는 오로지 자기 권위뿐, 바벨과 꼭 하나였던 선수 시절처럼 후회 없이 '으라차차 Jang' 그런 버전이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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