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백성혜 한국교원대 교수 

라디오에서 진주 난봉가가 흘러나왔다. 이 노래는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 때 어느 남학생이 불러 처음 들었다. 이 가사를 듣고 나는 난봉꾼인 진주 낭군과 그 남학생이 겹쳐 보여 그 남학생을 싫어했다. 그리고 그때는 죽은 부인이 부른 노래라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들어보니, 노래 중간에 아홉 가지 약을 먹고 목 매달아 죽은 부인을 보고 진주 낭군이 "내 이럴 줄 왜 몰랐던가? 내 사랑아!"하고 우는 장면이 있다. 그럼 이 노래는 진주 낭군이 부인 죽고 참회하면서 불렀나? 그런데 가사 앞부분에는 진주 낭군이 오기 전에 시어머니와 며느리만 아는 내용이 나온다.

시집살이 3년 만에 시어머니가 "며늘아, 진주 낭군 오시니 빨래 가라."고 하고, 며느리가 빨래하는데 말 탄 낭군이 못 본 듯이 지나간다. 그럼 이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알고 있는 시어머니밖에 없다.

시어머니 처지에서 이 노래를 들어보니, 기가 막힌다. 아들 온다는 소식 듣고 며느리에게 빨래 보내는 이유는 두 가지다. 아들을 마중하라는 것과 그동안 며느리에게는 주지 못했던 진수성찬을 혼자 차려야 했기 때문이다.

며느리가 빨래를 마치고 돌아오니 시어머니가 "며늘아, 진주낭군 오셨으니 사랑방에 가거라."는 대목이 나온다. 시어머니는 아들이 사랑방에서 온갖 안주과 술을 먹으며 기생과 노는 것을 몰랐을 리가 없다. 그렇지만 며느리가 그 꼴을 보고 참지 못하고 죽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도 그런 삶을 살았으니, 며느리도 그런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동태를 살핀 것 같다. 며느리가 사랑방에서 나온 후 아랫방에 가서 기척이 없자 달려가서 목맨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노래 가사에서 시어머니의 모습은 없지만, 집에 오자마자 기생첩을 옆에 끼고 권주가를 부르고 있던 아들이 갑자기 목맨 며느리를 발견했을 리 없다.

더구나 "화류객 정은 삼 년이오, 본댁 정은 백 년인데"하고 죽음을 안타까워한 사람도 아들이 아닌 시어머니였을 것 같다. 며느리의 죽음 앞에서 시어머니의 슬픔은 '흰 빨래는 희게, 검은 빨래는 검게' 빨 만큼 똑똑한 며느리를 잃은 아들의 앞날이 걱정되어서였을 것이다. 이 노랫말이 과거에는 며느리 처지에서 들렸지만, 이제는 시어머니 처지에서 들리는 것은 내가 시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인가 보다. 

국내 청소년 자살률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2022년 기준으로 10대와 20대의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다. 전체 사망 원인 중 자살의 비율은 10대가 33%이고 20대가 57%나 된다. 엄청난 비율이다. 더구나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0.8명에도 못 미쳐 세계 꼴찌이다. 초저출산국이 된 지 20년이 지났다.

젊은이들이 자살을 하거나 아이를 안 낳는 이유는 자신이 사는 삶이 긍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학업 스트레스나 가정 내 불화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이에 대한 반응은 다르다. 기성 세대가 참고 살던 관행을 신세대는 완강하게 거부하는 것이다. 앞으로의 세상을 살아가야 할 젊은이가 더 이상 자살하지 않도록 이 세대를 살아온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젊은이의 자살과 출산율 저하를 걱정하는 이유는 그들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의 다가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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