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광장] 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중독처럼 밭에 간다. 그냥 일상이 되었다. 농사치가 생겼으니 농부가 되는 거고, 농부가 되었으니 밭 또한 직장인 것이다. 시간 배분을 잘 해야 ‘Two Job’을 유지할 수 있다. 주어진 시간을 살핀다. 스물네 시간 중 제일 중요한 시간은 잠자는 시간이다. 그 다음은 먹어야 하고, 직장도 다녀야 한다. 순서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위 세 가지 시간은 중요할 것이다.

스물 네 시간을 낱낱이 헤집어 본다. 이미 늘상 해왔던 일 중에 어떤 시간을 버리고 줄여서 새로운 시간이 끼어 들어갈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러지 않아도 늘 ‘바쁘다. 바빠’를 무슨 구호처럼 외치고 살아온 삶에서 빼기를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잠을 줄일 수는 없는 일, 매일 7시간 이상 고수해온 그 아늑하고, 평온하고, 달달한 시간을 그대로 두자니 비집고 들어갈 만한 데가 별로 없다. 잠시도 멍 때려본 적이 거의 없이, 입고 꿰맨 옷처럼 꼭 째는 시간에서 ‘골프’를 들어냈다. 30대부터 연습장에도 가고, 실내 골프장도 가고, 친구들과 즐기고, 자선 운동에도 나갔다. 그렇지만 흥미를 못 느끼고, 실력도 구색 맞추는 수준 밖에는 되지 않았고, 시간도 많이 소요되는 운동이라 과감하게 골프채를 며느리에게 주었다.

눈을 뜨고도 빈둥대던 새벽 시간을 들어냈다. 그리고 해가 뜨겁지 않은 개와 늑대의 시간, 어스름한 저녁 시간도 이용했다. 잠은 더 깊어지고, 일상은 단순해지기 시작했다. 바쁘게 사는걸 아는 지인들이 불쑥불쑥 끼어들지 않아 시간 확보가 가능했다.

밭 한 귀퉁이에는 소꿉장난하듯 상추, 깻잎, 고추, 아욱, 호박, 가지 등 이름을 아는 채소 씨앗을 사서 뿌리고 모종을 이식했다. 비가 한번 올 때마다 마치 춤을 추듯 그것들이 자라서 열매를 내어주고 잎사귀를 키우는 바람에 식탁에 푸성귀가 늘 그득했다. 물론 풀도 그만큼 자랐다.

작년 늦가을에 보리 파종을 했는데 청보리가 익을 무렵부터 보이지 않던 새들이 한꺼번에 날아와서 겉보리 한 됫박도 수확을 못한 채 보리를 뽑아내야 했다. 고라니와 새떼가 지나간 보리밭에 들깨가 올라왔고, 명아주가 보리보다 크게 뻗었다. 일부러 뿌린 것은 아니지만 들깻잎이라도 먹어야 할듯해서 사이를 비집고 쭉정이 보리와 명아주를 구별해 뽑아내려다 보니 일도 더디고, 보리 꺼끄러기가 장화 안으로 들어오고, 손목을 그었다. 땀과 범벅이 되어 명아주를 잡아 흔들어도 꼼짝을 안 해서 삽으로 파야 했다.

이른 봄, 야들야들한 명아주를 뽑아냈더라면 묵나물이라도 해 먹었을 텐데, 며칠 품을 다 잡아먹도록 무성해졌다. 겨우 정리하고 옆을 보니, 잔디밭에서 다시 풀들이 시퍼렇게 올라오고 있었다.

봄 가뭄에 누런 잔디를 심어 놓고 노심초사했다. 비용 때문에 샘을 파지 못하고 물을 이웃에서 나누어 쓰는데 여기저기 주변 밭에서 물을 쓰는지 그야말로 ‘병아리 오줌’ 줄기 같은 호스로, 시간이 날 때마다 물을 주어야 했다.

마른 땅에 물줄기가 닿으면 흙냄새가 올라오고, ‘쓰읍쓰읍’ 소리가 났다. 목마른 짐승이 목구멍 저쪽 편에서 내는 소리처럼 잔디밭 고랑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며, 그것들이 목말라 죽을까봐 필자의 속도 타들어 갔다. 몇 번의 비가 오고 그곳에서 푸른색 잔디가 올라오자 쇠비름이 낙지발처럼 그곳을 덮어 버렸다. 호미가 또 활약을 해야 할 때이다. 무궁화나무에 송송이 맺힌 꽃봉우리들을 바라보며, 홍단심, 백단심, 청단심 등 무궁화가 무궁무진 피고 지는 상상으로 호미를 쥔 손에 힘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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