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칼럼] 오병익 충청북도교육삼락회장· 아동문학가 

큰 외손녀가 고2다. 네 살 적부터 서점이 주 놀이터였다. 빨간 날짜엔 마을 도서실·시립도서관에 처박히다시피 읽어낸 권수를 꼽아보면 웬만한 도서실 장서 못지않다. 그런 아이에게 "대학 포기할 거냐"며 학원으로 몰아대니 가엾다. 독서는 유통 기한 없는 평생 자산일진대, 입시가 독서의 장애 요소라면 용납 안 될 만큼 심대하다. 그 모순이 안쓰러워 외손에게 이따금 전화 단축키를 누르지만 '지금 받을 수 없어 삐 소리 후…' 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고등학교 교육과정 정상화와 대입 전형자료 제공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수능 5개월 전, 이른바 '초고난도 문항(수업시간 스토리와 전혀 무관한)'을 출제하지 않겠다는 비상벨이 울렸다. 왜 하필 수능 코앞에서 난리를 치나.  

◇킬러 문항?

그 배경에는 이미 대통령의 킬러문항 배제 지시에도 불구하고 지난 6월 모의고사(모의평가)에서 가시권과 멀자 결국, 대입 담당국장은 경질됐고 '어머 뜨거워'를 감지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까지 스스로 그만두는 등 홍역을 치렀다. 1994년 수능 도입 후 전 정부도 그전 전 정부도 숱하게 겪은 '공교육 혁명' 수난사였다. 역대 정권의 '괴짜 수능, 물 수능, 불 수능' 대책은 불안불안했다. 일례로 사교육을 근절하겠다며 EBS에 매달려 수험생들 늦도록 붙들어 두고 TV 화면만 지킨 '야간자율학습'이 대박 났던 때도 있었다. 지문 70% 이상 방송교재를 베껴 변별력은커녕 '운(運)7 실(實)3' 고백을 기억한다. 

최근 입시업계는 국어(10%)·수학(2~3%)·영어(20%)의 3과목 평균 정답률 10% 가량을 특별 고난도 문항으로 분석하였다. 부랴부랴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논란의 핵심인 킬러 문항(공교육에서 다루지 않은) 관련 "사교육으로 내모는 근본 원인이었다. 수능 적정 난이도가 확보되도록 출제 기법을 바꾸겠다"고 밝혔지만 학교 수업과 공교육 교과과정, '킬러 문항' 정의엔 초점을 흐렸다. 자칫 '날림·땜빵' 수능 딜레마를 어쩌랴. 암튼 사교육비 감소와 공교육 경쟁력에 미칠 더블 펀치력은 '노 킬러(No killer)'로 머쓱할 공산이 크다.

◇대입제도, 갈아엎어야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은 세계 으뜸인데 월드클래스 급 인재는 드물다. 그 밑동은 '빨리 빨리'에 있다. 거꾸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청주의 수학학원장 얘기를 빌면 "기초 학습, 단계 지도는 먼 나라 이야기다. 요령과 속진 주범은 오히려 학부모"란다.  AI시대 속 출산율 최하위권, 저마다 쓰임은 다른데 100인 100색 가치는 송두리째 수능 속으로 묻혀버리지 않았나. 오죽하면 석학의 제비뽑기 처방까지 나왔겠는가.

이 역설을 이해하는 게 선결 과제다. 전국 4년제 대학 총장들의 설문조사 결과(51.8%)처럼, 차라리 수능을 자격시험 정도로 바꾸고 대학 자율에 맡겨라. 말 나온 김에 수능 증후군과 헤어질 담대한 결심을 하자. 단연코 대입제도부터 완전히 갈아엎어야 진짜 사(思)교육은 열릴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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