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고분 귀중유물 1천여점 추가발굴

慶州市(경주시) 황남동155호 고분을 발굴중인 文化財管理局(문화재관리국) 발굴조사단은 이제까지 출토된 金冠(금관) () 가장 크고 찬란한 金冠의 내의관을 포함, 모두 1천여 점의 귀중한 유물들을 추가로 발굴했다고 28上午(상오) 공식 發表(발표)했다.

發表에 의하면 이날 발굴된 유물은 금관의 내관 외관 목걸이 금가락지 금은장환태도금제관모 주록금구 등이 발굴되었다.

이번 발굴된 金冠은 내관과 외관이 따로따로 떨어져 있었으며 형식은 금령총금관(보물 제33824年 慶州市 노동동에서 발굴)과 모양이 비슷했다.

동유물발굴 조사단장 ()정기 博士(박사)는 이번 발굴된 新羅金冠(신라금관)의 특징을 금령총금관보다 영락 곡옥이 더 크고 많이 달려있었으며 대륜()도 더 크며 정면 가운데에 있는 곡옥은 이제까지 발견된 금관장식 공옥 중 가장 큰 것이라고 말하고 시신의 신분은 엄청난 부장품과 묻힌 王冠(왕관) 등으로 보아 또는 그와 비슷한 지위에 있었던 권력자로 보이며 이 고분이 金冠총과 거의 비슷한 연대(5~6세기 전후)에 만들어 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날 發表된 유물들은 지난 15()부터 26까지 12日間(일간) 출토된 것으로 지난번 發表된 것까지 합치면 155호 고분의 출토유물은 모두 13백여 점으로 불어났다. (하략) <8749·1973729일자 1>

 

천마총 발굴 기사가 충청일보에 연속적으로 보도된 것으로 비쳐보면 50년 전 당시에도 이것을 얼마나 큰 역사적 사건으로 인식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이에 앞서 2년 전인 1971년 충남 공주 송산리고분군에서 무령왕릉(武寧王陵·송산리고분군 제7호분)이 발견됐다.

송산리 5, 6호 고분의 배수로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된 것인데, 축조연대와 피장자가 분명하며 부장품이 고스란히 발견돼 삼국시대 고분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게 됐다.

그런데 이 당시 발굴은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무령왕릉 발굴 현장에 대한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원형이 크게 훼손됐던 것이다.

천마총 발굴과 관련해서 같은 류의 비판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발굴 작업은 무난하게 진행됐던 것으로 보인다.

1982년 국보로 지정된 천마도는 백화수피를 여러 겹으로 겹치고 그 위에 다시 고운 백화수피를 입혀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14줄의 사선으로 누벼 장니(障泥)를 만든 다음 그린 것이었다.

천마도가 그려진 장니는 마구의 일종으로, 이는 신라에서 기마풍습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기마풍습은 북방 이민족들이 중국에 왕조를 세웠던 오호십육국시대(五胡十六國時代)를 거치면서 동아시아에 확산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이전의 전쟁이 보병을 주축으로 하던 것과는 달리 당시의 전쟁이 기마전 양상을 띠는 것과 연관된다. 전쟁의 양상 자체가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천마도는 45세기 고구려에서 유입된 기마문화가 신라로 점차 확산됐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김명기 편집인·논설위원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