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웅 칼럼] 김진웅 수필가
 

길을 가다 보면 평탄한 길만 있는 것이 아니고, 급류도 건너야 하고 오르막길도 가시덤불도 걸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이런 역경을 겪고 극복하는 것도 우리 삶 모든 일상도 수행(修行)이고 수양(修養)이라는 것을 늦게나마 깨닫게 되어 기쁘다. 올여름은 평년보다 극심한 폭염에 시달렸고, 지난 7월 9일 무렵부터 많은 양의 비가 짧은 시간에 좁은 지역에 집중되어 내리는 집중호우가 이어져 전국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 다른 사람들의 일로만 알았는데 필자도 수재민의 한 사람이라니.

최근 장마 때 국지적 폭우가 충청과 전북 지역에 집중적으로 폭포처럼 퍼부었다. 지난 7월 14일 군산에서는 하루 372.8㎜가 쏟아졌고, 15일에도 70.2㎜가 내렸다. 세종시에는 이틀간 466.4㎜, 청주에는 427.8㎜가 내렸는데 같은 기간 서울에는 단지 75.0㎜ 비가 왔다고 한다.

지난 7월 15일, 먼동이 틀 무렵 일어나 현관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담장이 있어 아늑하던 곳이 훤하고 허전하였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옹벽과 담장이 붕괴되어 있었다. 부분적으로 무너진 것이 아니라 마치 폭격당한 듯 10m 이상 한꺼번에 없어지다니. 날이 더 밝기를 기다렸다가 심호흡을 한 후 침착하게 아내와 마을 통장에게 알렸다. 밖에 나와 본 후 소스라치게 놀라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조용하게 말한 자신을 칭찬했다. 만약 여과 없이 허둥대며 소리쳤으면 심신이 여린 아내가 병원에 실려 갔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발묘조장(拔苗助長)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맹자(孟子)'의 '공손추'(公孫丑) 상(上)에 나오는 이야기로, 급하게 서두르다 오히려 일을 망친다는 의미의 사자성어이고 이를 줄여서 조장(助長)이라고도 한다. 조장은 '사행심 조장', '지역감정 조장' 등처럼 '바람직하지 않은 일을 더 심해지도록 부추김'의 의미라서 당연히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데 매스컴에서도 긍정의 의미로 잘못 쓰는 사례도 있어 씁쓸하다. 진둥한둥하며 빨리하려고 하면 제대로 이룰 수가 없고,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면 오히려 일을 그르치게 된다는 교훈을 배웠으니, 우리 집 수해복구도 냉철한 머리로 차분하게 대처하겠다.

마을 통장이 우리 집 피해 상황을 알렸는지 아침 일찍 탑대성동사무소(동장 성은숙) 직원 몇 명이 나왔고, 여자분도 있었는데 인사를 하고 보니 동장이다. 한참 둘러보고 돌아가더니 더 무너지지 않도록 주문 제작한 청색 비닐 덮개를 갖고 와 씌워주었다. 골목길 입구에는 안전 테이프를 설치하고 '호우에 따른 붕괴로 안전사고가 우려되어 통행을 제한하오니 양해하여주시기 바랍니다.'란 안전 문구를 써서 코팅한 종이까지 부착해 주었다. 호우 속에 진두지휘하며 힘겨운 응급조치를 해준 동장님과 수고하신 분들에게 감동하며 많은 생각을 하였다. 필자도 41여 년 교육 현장에서 최선을 다한 것 같지만 이런 투철한 사명감으로 이분들처럼 근무했는지 되돌아본다.

며칠 후 우리 집 피해 현장에서 협의한다기에 나가보니 길에 널브러진 폐기물을 처리해준다고 해서 무척 고마웠다. 우리 집의 경우는 동사무소에 가서 피해 신고를 했어도 주거하는 주택이 아니고 외부 시설이라 재난지원 대샹이 아니라고 해서 너무 안타깝다. 청주시가 재난구역이 되었어도 소용없는 것인가. 그래도 불의의 수해를 당해 심신이 지쳐 실의에 빠진 우리를 위해 동사무소에서 주선하여 자원봉사자의 지원을 받아 막힌 길을 치워주어서 다행이다. 덕분에 통행 불편을 해소하고, 차근차근 복구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얻게 되어 무척 기쁘고, 수고하신 분들께 거듭 감사드린다.

이번 폭우에 수십 명이 유명을 달리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다시 한번 '기후 위기'에 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7월 20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기준 집중호우로 인한 누적 인명피해는 사망자 46명, 실종자 4명, 부상자 35명으로 사망자와 실종자를 합한 수는 총 50명에 달한다. 14명의 사망자를 낸 오송 지하차도 침수 참사는 더 참담하다. 재난이면서 인재이기에 가슴이 아프다.      

1980년 7월 22일, 보은에서 근무할 때 물난리가 났을 때 침수가 되어 산에 올랐다가 산사태를 만나 자칫 목숨을 잃을 뻔한 악몽도 떠오르고 환각에 빠지는 것 같다.

앞으로 집중호우 등으로 인한 재난도 유비무환과 방미두점(防微杜漸) 태세로 잘 대비하여 미리 막을 수 있거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게 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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