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생각하며] 황혜영 서원대 교수

피렌체 르네상스 시대에서 위대한 로렌초 메디치 시대는 천재들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다.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1445-1510)는 로렌초 메디치 때 자신의 예술혼을 활짝 꽃피운 화가다.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았던 보티첼리의 예술성은 당대에는 높이 평가받았지만 그 이후 오래도록 대중에게 잊혀졌다가 19세기에 와서야 재조명된다.

보티첼리의 ‘메달을 들고 있는 청년 초상화’는 우피치 미술관 보티첼리 방에 전시되어 있다. 처음 그곳에 갔을 때는 그 유명한 ‘프리마베라’나 ‘비너스의 탄생’에 시선이 사로잡혀 스치듯 지나쳤다가 두 번째 방문하였을 때에야 그다지 크지 않은 이 청년 초상화 앞에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이 그림에는 인물이 새겨진 메달을 들어 보여주는 청년이 그려져 있다. 그렇다면 그림은 누구의 초상화일까? 우선 화면에 가득 채워진 빨간 모자를 쓰고 정면을 응시하는 청년의 초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좀 더 들여다보면 그림에는 청년이 손으로 감싸 보여주는 메달 속 인물 초상화도 있다.

1464년에 제작된 이 메달에는 위대한 로렌초의 조부이자 르네상스 일으킨 코시모 디 메디치 특유의 옆모습과 흐릿하게 닳은 ‘위대한 코시모 메디치 최초의 국부MAGNUS COSMUS MEDICES PPP’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메달 안에 인물과 그 인적 사항, 그를 예찬하는 문구까지 담겨 있으니 작품이 메달을 든 젊은이를 보여주고자 하는지 젊은이가 보여주는 주화 속 주인공을 보여주고자 하는지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 '메달을 들고 있는 청년 초상화'(Portrait of a Young Man holding a Medallion, 1475, 나무 위 템페라, 51.5x44cm, 우피치 미술관)
▲ '메달을 들고 있는 청년 초상화'(Portrait of a Young Man holding a Medallion, 1475, 나무 위 템페라, 51.5x44cm, 우피치 미술관)

그림 속 젊은이의 초상과 그가 들고 있는 메달 속 초상은 서양 초상화의 변천을 단적으로 대비해준다. 메달 속 얼굴은 고대 그림에서 주로 보이는 옆모습이라면 젊은이의 얼굴은 정면의 4분의 3의 각도에서 포착되어 입체감이 느껴지는 구도로 되어 있다. 또 청년의 얼굴 옆에 보이는 작게 그려진 풍경은 플랑드르 화풍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얼굴의 4분의 3 각도와 함께 그림에 입체감과 원근감을 주는 15세기 아방가르드의 혁신적인 창안이다.

두 인물의 초상은 얼굴을 포착하는 각도로도 고대 그리스 유산과 르네상스의 혁신을 대비해 보여준다면 배경 차원에서도 주화 속 인물의 뒷면에는 배경이 없고 공간감도 느껴지지 않지만 젊은 남자 뒤편에서는 대기의 입체감과 풍경의 공간감이 느껴져 두 인물 초상화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계가 지어진다. 그 무엇보다 이 작품만이 가진 고유한 독창성은 두 인물을 결정적으로 구분해주는 질료의 차이에 있다.

이 작품은 나무 위에 템페라 물감으로 그려졌는데, 유일하게 메달 부분만 실제 입체감이 있는 테라코타로 되어있다. 젊은 남자의 얼굴에 드리워진 채색된 그림자의 환영과 실제로 입체적으로 새겨진 메달 속 얼굴에 드리워지는 마티에르의 음영은 서로 다른 차원의 그림자이다.

하지만 신비롭게도 평면에서 입체감과 공간감, 원근감이 느껴지게 표현하는 혁신적인 르네상스 식 초상화와 평면적인 옆면을 실제 테라코타 방식의 입체감을 반영한 초상화 사이의 이질성의 단절과 틈은 역동적 트롱프뢰이유(착시)로 하모니를 이룬다.

르네상스 정신으로 그려진 젊은 청년의 초상화와 그가 두 손으로 액자처럼 소중히 감싸 정면으로 보여주고 있는 고대 주화 속에 새겨진 코시모 디 메디치의 초상화는 긴 중세를 뚫고 저 먼 고대의 위대한 유산에서 길어온 원천에서 빅뱅처럼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워낸 르네상스 정신의 초상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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