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아침에] 김영애 수필가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남발하고 산다. "언제 밥 한번 같이 먹자"라는 말을 자주 한다. 아마도 가장 많이 하는 약속이지만 가장 많이 지키지 못하는 "밥 한번 같이 먹자!"는 말일 것이다. 습관처럼 그 말을 자주 하는데 그 수많은 약속 들이 말처럼 쉽지 않아서 마음에 부채로 남아 있기도 하다.

한국인의 인사말 중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밥이란 음식을 먹는 단순한 뜻 그 이상의 마음을 나누는 따듯한 정(情)의 의미일 것이다. 예로부터 손윗 어른께는 "진지(밥) 드셨느냐"고 인사를 드리고 손아랫 사람들에게는 "밥은 잘 먹고 다니느냐"고 안부를 챙겼다. 밥은 곧 삶인 것이다. 먹어야 살고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이 밥의 의미라서 밥은 삶의 원천이다.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밥은 잘 챙겨먹었니?"라고 한결같이 말하는 사람이 있다. 늘 똑같은 말인데도 날마다 다정하게 다가온다. 들을수록 정겹다. 밥이란 참 따듯한 온도의 언어이다.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 사람들 속에서 함께하는 시간을 좋아한다. 자주 보고 살아도 늘 멀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고 어쩌다 마주쳐도 어제 본 듯이 반가운 사람들이 있다.

나의 삶 속에는 나를 거울처럼 비춰주는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며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에너지가 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그리고 생각만 해도 행복해지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좋은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는 시간을 좋아한다. 편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식사 자리는 소화가 안 될 정도로 예민한 편이어서 불편한 자리는 갖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초대하는 식사 자리는 맛이 있지만 초대받는 자리는 편치가 않아서 자주 사양하게 된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마음을 나누며 서로의 생각을 맛있게 음미하는 시간이다. 밥을 같이 먹자고 하는 말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정을 나누고 싶다는 의미의 전달인 것이다. 축하할 일이 있을 때도 함께 밥을 먹고 소원했던 관계를 풀 때도 함께 밥을 먹는다. 슬픈 일이 있어서 위로를 할 때도 밥을 먹으면서 토닥인다.

나는 밥을 잘 사는 편이다. 절대로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좋아서 밥을 먹자고 먼저 청하기 때문이다. 밥을 사준다는 것은 관심의 표현이다. 마음을 나누면서 생각을 공유하고 싶다는 의지인 것이다. 

돌이켜보니 그렇게 함께 밥을 먹는 평범한 시간 들을 영위하면서 나를 제대로 붙들어 맬 수도 있었고 그들 안에서 나는 비로소 가치 있는 사람 이기도 했다. 밥을 먹으면서 주고받는 대화들 속에서 어떤 이의 귀한 철학이 내 것이 되기도 하여서 두고두고 되새김을 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밥 한 그릇으로 얻기에는 너무 값진 인품의 향기들이 오래오래 내 안에 머물기도 하였다. 

그 평범한 말 밥 한번 먹자! 의 많은 시간 들이 피가 되고 살이 되어서 삶의 자양분이 만들어진다. 그 시간 들이 하루하루 모여서 나라는 사람을 만들고 있다. 나를 만드는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밥 한번 같이 먹자"라는 약속을 남발하면서 나의 다이어리에 또 하나의 밥 약속을 추가한다. 누군가에게 '밥 잘 사주는 누나'로 또는 '밥 잘 사주는 언니'로 라도 기억되는 사람이면 좋겠다. 긴 장마로 눅눅해진 마음을 뽀송뽀송하게 해줄 지인에게 전화를 해서 함께 맛있는 밥을 먹자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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