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광장] 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샤론의 장미는 무궁화의 영문명이다. 우리나라 무궁화의 역사는 단군조선 시대부터 기록되어 있으니, 꽃이 가진 역사도 다양하다. 무궁화의 학명이 ‘Hibiscus syriacus’ (히비스쿠스 시리아쿠스)여서 중동지역인 시리아와 관련 있다고 하나, 시리아에는 무궁화가 없다고 한다. ‘Rose of Sharon’(샤론의 장미) 또한 기독교에서는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꽃으로도 알려져 있고, 단군 할아버지가 이스라엘에서 오신 분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무궁화는 성스러운 땅에서 피어나는 장미처럼 아름다운 꽃이라는 의미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요즘은 거의 매일 무궁화 꽃을 본다. 한창 꽃이 피고 질 시기이다 보니 당연한 듯하지만, 무궁화에 관심이 없던 몇 년 전에는, 길가 어디에 무궁화가 심어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무궁화가 나라꽃으로 지정되지 않았다는 말에 충격을 받고 나서 무궁화에 깊이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래서 인터넷 검색도 하고, 다큐멘터리 영상도 보니, 일제 강점기 무궁화의 처절한 역사에 마음이 아렸다.

36년 동안 ‘식물 탄압’을 받아온 무궁화, 그로 인해 ‘무궁화에 진딧물’이라는 수식으로 인식이 달라진 우리 민족, 오 천년 이상의 역사가 있는 꽃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 100년 이상이 된 무궁화가 겨우 세 그루밖에 되지 않는 기막힌 사연, 더구나 백성들이 사랑한 나라꽃 무궁화가 아직도 헌법에 국화로 지정되지 못했다는 것이 필자의 의지를 부추겼다.

다른 아름다운 화초와 마찬가지로 무궁화도 햇볕이 잘 들고, 물이 잘 빠지는 좋은 땅에서 잘 자란다. 그런데 길가에 심어 놓은 무궁화는 그만의 땅이 없다. 다른 나무 사이로 셋방살이하듯 구석에 심겨 있거나, 무궁화끼리 심어 놓았어도 너무 촘촘하여 가지가 뻗어갈 사이가 없다. 그런 무궁화를 보면 일제가 만든 고문 틀을 상상하게 된다. 팔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도록, 관처럼 짜서 세워놓은 것처럼 말이다.

나무는 하늘을 향해 가지가 뻗는 만큼 땅에도 뿌리 내릴 자리가 있어야 한다. 그러니 아름드리 무궁화를 만들고 싶으면 그것의 크기만큼 땅을 내주어야 한다. 어쩌다 홀로 피어있는 무궁화를 보면 수백 송이 꽃이 화사하게 피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우리가 비전을 이야기할 때 인용하는 ‘코이’라는 잉어처럼 말이다.

‘코이’는 작은 어항에 넣어두면 손가락 크기로 자라지만 강에 풀어두면 1미터가 넘게 자란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비전을 크게 갖고, 자신이 마음껏 성장하도록 계획하라고 말한다. 무궁화가 얼마나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는지는 처음 심어 놓은 자리를 보면 알 수 있다.

필자는 마정리 무궁화 밭에 이런 간판을 달고 싶다. ‘무궁화나무 그늘에 기대어.’ 기대려면 사람의 무게를 감당할 만큼 목대가 굵어야 할 것이다. 사람이 나무 그늘에 앉으려면 나무 아래로 쉽게 걸어 들어갈 수 있도록 키가 커야하고, 그늘이 생기려면 전지를 잘하여 밖으로 가지가 무성해야 한다. 백년이 넘은 ‘방동리 무궁화’는 재실 마당에 홀로 자신의 영지를 가지고 있었기에 ’천연기념물’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올해 처음 꽃을 피운 마정리 무궁화는, 양지 밭에 널찍널찍 자리 잡아 주었으니 시간이 지나면 수천 송이 꽃을 달고 여름 하늘을 향할 것이다.

‘샤론의 장미’를 보기 위해 낫 들고, 호미 들고, 땀방울 쏟아가며 여름내 그 곁을 서성였다. 주먹보다 더 크게 벙글 어진 무궁화 꽃을 살포시 손바닥 위에 얹는다. 꽃밭에서 ‘꽃 멍’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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