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며] 이혜정 경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문학박사 

올해 5월, 연구실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중국인 석사 지도 학생이 수줍은 듯 빨간 장미꽃 한 송이를 건네면서 말한다. “우리 어머니께서 '일일위사종신위부一日為師終身為父'( 하루를 모신 스승이라도, 평생 아버지와 같이 존경하여 모셔야 한다)라고 하셨어요.” 알고 보니 스승의 날 감사 인사하러 온 것이다.

매년 스승의 날이 되면 학생회 대표들이 감사 인사를 하러 연구실로 찾아온다. 다른 선생님들도 찾아뵈어야 해서 서로 짧게 인사를 나누고 만남을 마무리하지만, 떠난 후에도 마음 한편에는 한참 동안 따뜻함이 사라지지 않는 그런 날이다. 그런데 이날은 좀 이상했다. 따뜻함이야 당연히 느끼는 감정이지만 이상하게 생소함도 함께 찾아왔다. 왜일까? 생각해 보니 선생을 부모같이 여긴다는 그런 정서가 참 낯설게 다가와서였다.

요즘 대학은 복수전공, 융합 전공 등 다양한 전공을 이수하는 게 하나의 트렌드가 된 지 오래다. 창의적인 융합인재를 양성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교육과정인데, 학생들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보통 2학년, 늦으면 3학년 때는 제2의 전공을 찾아 떠나는 경우가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생들 눈에는 교수가 단지 자신들에게 전공지식을 전수해주는 교수자인 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대학은 아직 형편이 나은 편이다.

얼마 전 뉴스에서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악성 학부모 민원에 시달리다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한다. 애도하는 분위기 속에서 ‘더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교권 침해를 당한 적이 있는 전·현직 교사들이 악성 민원 사례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학생들의 도 넘는 행동까지 교권 침해 유형도 그야말로 상상 초월이다. 정치계와 교육계에서는 교권이 이 정도로 추락한 데는 지나치게 강화된 학생 인권에 있다는 주장에 연일 찬반 논쟁을 한다. 일부 언론들은 설상가상으로 학생 인권 강화가 교권을 추락시킨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식의 확증 편향적 보도 행태까지 보이고 있다.

학생 인권과 교권을 제로섬 게임으로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 학생과 교사는 ‘학습자’와 ‘교수자’라는 공적인 신분 이전에 모두 인격을 가진 존엄한 존재로서 둘 다 온전히 존중받아야 할 권리를 가진다. ‘학부모’라는 제3의 존재까지 등장한 현실에서 단순히 학생인권조례의 독소조항을 개정하고 교권 회복을 위한 법을 개정한다고 해서 양쪽의 인권이 제대로 지켜질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런 조치는 하석상대 下石上臺에 불과하다.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괸들 잠시의 평온함은 영위할지 몰라도 그게 인권회복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編)에 '군군신신부부자자 君君臣臣父父子子'(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의 글귀가 있다.

각자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라는 공자의 말씀이시다. 무한경쟁시대, 성공 강박에 취약한 학교에서 꼭 명심해야 할 경구가 아닌가 한다. 선생은 선생답게, 학생은 학생답게, 학부모는 학부모답게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정확히 인지하고 분수를 지켜가며 책임감 있게 행동할 때 진정으로 상호신뢰, 상호존중 사회로 옮겨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해야 하는 일은 제도 정비가 아니다. 스스로의 역할에 대한 인식 재정비가 더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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