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고의 신비… 채색 천마도 출토

金冠(금관)을 포함하여 2천여 점의 文化財的(문화재적) 가치가 풍부한 遺物(유물)을 출토해낸 바 있는 慶州市(경주시) 皇南洞(황남동) 1백55호 고분의 유물상자 속에서 1천400~1천500년 전 三國時代(삼국시대) 新羅(신라)의 선명한 채색화 2점이 발견돼 또 다시 學界(학계)를 흥분시키고 있다.

우리나라 最高(최고)의 繪畵(회화)로 기록될 이 그림은 23일 하오 馬具(마구)와 함께 출토됐는데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껍질 위에 자작나무 껍질을 붙이고 그 위에 朱(주)·黃(황)·黑(흑)·白(백)·靑色(청색)의 선명한 채색이 天馬圖(천마도) 한쌍을 아로새기고 있으며 주위에는 忍冬紋(인동문)의 테가 그려져 있다.

24일 하오 慶州市 사적관리사무소에서 가진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金正基(김정기) 발굴조사단장이 공개한 이 彩色(채색) 飛天馬圖(비천마도)는 3국시대의 繪畵론 벽화를 제외하고는 유일한 것이며 古墳築造年代(고분축조연대) 측정에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문화재관리국 학술조사단은 유물상자의 유물수습에 골몰하던 중 지난 22일 말 안장·말 배가리개 등 馬具 밑에서 가로 75㎝·세로 53㎝·두께 6㎜의 나무껍질 2장을 발견, 원자역연구소 화학실장 金裕善(김유선) 박사를 급히 불러 과학처리를 해본 결과 23일 5색이 뚜렷한 채색과 함게 나르는 白馬圖(백마도)가 나타난 것이다.

두 마리의 말이 두 발을 치켜세우고 하늘로 치솟는 모양을 담은 이 그림은 白馬가 그려진 부분은 폭 10㎝의 바깥 테를 돌리고 인동문(담장이덩굴 모양의 무늬)이 가로에 6개·세로에 4개씩 모두 20개가 그려져 있었다.

그림의 技法(기법)은 활발하고 힘찬 線(선)의 구사로서 목덜미와 꼬리의 털이 휘날리는 모습이 애무 寫實的(사실적)이었다. (하략) <8773호·1973년 8월 26일자 4면>

 

경주시 황남동 제155호분에서 출토된 그림이 천마도이다. 이 고분의 이름을 천마총(天馬塚)으로 붙인 것도 천마도 출토에 따른 것으로, 이 그림이 그만큼 매우 큰 문화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분의 형식은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으로 분류된다. 천마총에서 발굴된 금관(金冠)·금제관모(金製冠帽)·금제과대(金製銙帶)는 1978년 각각 국보로 지정됐다.

천마도의 정식 명칭은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慶州 天馬塚 障泥 天馬圖)’.

세로 53.0㎝, 가로 73.0㎝ 크기로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1982년 국보로 지정됐다.

천마도가 그려진 2장의 장니, 즉 말다래는 말 탄 사람의 옷에 진흙이 튀지 않도록 말의 배 양쪽에 늘어뜨린 네모난 판을 가리킨다.

백화수피(흰 나무 껍질)를 여러 겹으로 겹치고 그 위에 다시 고운 백화수피를 입혀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14줄의 사선으로 누벼 장니(障泥)를 만든 다음 천마도를 그렸다.

천마도가 그려진 장니는 마구(馬具)의 일종인데, 이는 신라에서 기마풍습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마 문화는 선비족을 비롯한 오호십육국의 북방 이민족에 의해 먼저 시작돼, 고구려를 거쳐 신라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천마도가 그려진 장니가 발견된 것은 천마총이 유일하다.

/김명기 편집인·논설위원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