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이희영 배재대학교 기초교육부 교수

지금은 찾을 수 없는 지하 동굴에 중세 시대 옛 성과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던 프랑스 서남부 베제르 계곡의 북쪽 몽띠냑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1940년 9월 어느 날, 기르던 강아지가 사라져서 찾으러 다니던 마르셀은 마을 뒤 라스코 언덕을 뒤지다가 자신의 강아지와 그 강아지가 파고 있던 제법 큰 구덩이 하나를 발견했다. 어딘가 깊게 연결된 것처럼 보이는 구덩이, 어쩌면 그 구덩이가 보물이 있는 지하 동굴로 가는 입구가 아닐까. 마르셀은 설레는 마음을 안고 나흘 후 친구 조르주, 자크, 시몬과 함께 다시 그곳을 찾았다. 그리고 두어 시간 풀을 뽑으며 구덩이를 더욱 깊게 파다 보니 어두컴컴한 터널이 보였고, 그곳을 엉금엉금 기어가다 보니 커다란 동굴이 나타났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가 발견된 순간이었다.

라스코 동굴은 총길이가 240m에 달하는 동굴로 2,000여 점의 벽화가 남아있다. 동굴 곳곳에 황소, 말, 맘모스, 사슴, 염소 등의 동물이 다양한 모습과 색으로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는데, 그중 가장 특별한 그림은 후진(後陣)에 있는 ‘사고 장면’이다. 사고 장면은 화살을 맞아 죽어가고 있는 야생 수소의 고통스러운 모습과 그 앞에 양팔을 벌린 채 새 가면을 쓰고 누워 있는 남자의 모습, 그리고 그 앞에 있는 새 모양의 솟대가 그려져 있는 벽화를 통칭한다.

어떤 학자들은 이 그림을 두고 의식을 행하고 있는 주술사의 모습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 어떤 학자들은 야생 수소를 사냥하고 난 뒤 지친 인간의 모습이라고도 한다. 또 다른 학자는 한 남자가 수소의 공격을 받아 목숨을 잃고 난 뒤 육체에서 빠져나온 영혼을 그린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것을 보면 태초의 이야기는 신이 존재해 우리를 보살피고 있다는 종교이거나, 야생 수소를 만나면 위험하니 도망가라는 경고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마저 상상일 뿐 무엇도 참이라고 확정지을 수 없다. 다만 확실한 하나는 그 시대에도 이야기는 존재했다는 것이다.

라스코 동굴 벽화가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는 기원전 17,000년경이다. 아직 인류가 정착하지 못하고 동굴을 거점으로 수렵 생활을 하던 구석기 시대, 빛 한 점 제대로 들지 않는 동굴에서 뜨거운 불을 비춰가며 돌조각을 쥐고 이야기를 ‘새겼을’ 당시 인류를 상상해 보면 이 벽화는 노동의 결과이지, 절대 취미의 흔적일 수 없다.

그렇다면 구석기 시대 인류들은 이 거대 프로젝트를 통해 누구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싶었던 걸까. 이것에 대해서도 우리는 상상할 수 있을 뿐 아무것도 확정할 수 없다. 다만 벽화 안에 어떤 의미가 내재되어 있을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가정은 고대의 벽화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기표현 욕구의 흔적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을 보면 인간은 태초부터 자신이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을 다른 이에게 전달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만들어졌을 것이고, 그것을 기록할 ‘문자’가 발전했을 것이다. 그렇게 인류는 지식을 축적하고 더욱 지혜로워졌다. 그리고 그것들을 기록하고 전달하고 보존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오늘날 이야기는 과거와는 다르다. ‘새기기’는 ‘쓰기’로, ‘쓰기’는 ‘치기’로 바뀌었다. 구석기 시대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이 어느 공동체의 거대 프로젝트였고, 1,000년 전 글쓰기가 누군가의 일생일대의 과업이었다면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과거에 비해 이야기를 빠르게 쓰고 빠르게 읽는다. 이 속도에 익숙해지다 보면 천천히 글을 읽고 사색하는 시간이 낭만인지, 낭비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야기 속에 담겨있는 욕망은 태초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인가를 기록하고, 전달하고 보존하고자 하는 욕망. 태초부터 지금까지 그 ‘무엇’은 언제나 자신이 마주한 삶이었을 것이다.

인터넷 떠도는 글에서 ‘사람’은 ‘삶’과 ‘앎’의 합성어라고 하는 표현을 본 적이 있다. 내가 써 내려가는 이야기에도 삶과 앎이 있었으면, 그래서 사람 내음이 났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천천히 글을 쓰고 또 읽어 내려가는 시간이 이왕이면 낭만으로 헷갈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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