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생각하며] 황혜영 서원대 교수

용인 호암미술관에서는 '하늘 한 점, 김환기 전' 전시를 9월 10일까지 개최 중이다. 이 전시에서는 김환기 작가의 40년에 걸친 창작 여정을 파노라마로 보여주며, 총 120여 점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필자는 이번 방학 동안 두 번 김환기의 전시를 찾았다.

김환기 작가는 일찍이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한국으로 귀국한 후, 독특한 방식으로 한국의 전통미와 서양 회화를 융합시키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1956년부터 1959년까지는 파리에서 시간을 보내며 국제 미술계와 교류하였으며, 그 후에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활동하였다. 그러나 그는 뉴욕에서 새로운 예술적 도전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1940년대 후반부터 50년대에는 한국의 전통적인 소재인 항아리, 달, 학 문양 등이 '구상과 추상의 병치' 형태로 등장하는 시기를 거쳤다. 김환기는 조선 백자 항아리의 아름다움과 고유한 미를 발견하고, 이를 자신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그려내었다. 항아리와 보름달의 형태는 그의 작품에서 추상적인 형태로 반복해서 나타났는데, 이것은 그의 예술적 탐구와 실험의 결과였다.

1970년에서 1974년 타계하기까지 김환기는 독창적이고 개성 넘치는 전면점화 작업을 완성해 절정에 이른 예술적 스타일을 보여준다. 그의 전면점화의 완성된 스타일이 처음 소개된 것은 1970년 개최된 '한국미술대상전'에 출품한 작품에서이다. 그는 김광섭 시인의 시 ‘저녁에’에서 영감을 받아 시에 나오는 구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로 제목을 붙여 출품하였는데 이 작품으로 그는 한국미술대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다양하게 변화되는 전면점화 시리즈에서는 구체적인 사물의 형태가 모두 사라지고 '순수한 조형 요소'로 화면이 채워진다.

그의 전면점화 작품에서는 모든 존재에서 오직 본질만 남겨두고 다른 모든 것은 비워진 상태의 단순한 점과 그것을 둘러싼 테두리가 기본 구성 요소를 이룬다. 그의 점은 “죽어간 사람, 살아 있는 사람, 흐르는 강, 산, 돌, 풀포기, 꽃잎이며, 새소리”이며 그것에 테두리를 씌워주는 것은 각각의 존재에 ‘새로운 창’을 열어주는 것이다. 전면점화에서 점과 테두리의 기본 구성요소는 무한 반복적으로 연속되어 선을 이루고 이들 선이 반복해서 이어지는 방향에 따라 섬세한 결과 무늬가 생긴다. 이때 점과 테두리는 모두 동일한 것 같지만 매번 우연적인 크기와 형태, 농담, 스밈과 번짐에 따라 각각 고유하고 유일무이한 존재가 된다.

그의 작품은 극도로 단순화된 점과 테두리의 리드미컬한 연속에서 무한한 우주의 아름다움과 복잡성을 드러내며 깊은 울림의 여운을 남긴다. 김환기의 전면점화는 무와 무한을 단박에 뛰어넘어버리는 극히 단순화된 형태의 무한한 반복과 차이의 변주를 통해 충만과 여백, 채움과 비움이라는 무위자연적인 역설적 긍정의 에너지를 뿜어내며 존재의 본질과 우주의 신비로움을 표현한다.

김환기의 전면점화 작품은 예술적인 진화와 실험의 결과물로써, 그의 예술적 열정과 독창성을 증명하는 중요한 작품 집합이다. 그의 작품은 점과 선, 형태와 비형태, 채움과 비움,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하나의 천체에 담아내며 관객들에게 영원과 무한의 우주적 영감과 사유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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