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백성혜 한국교원대 교수

현대인들은 정신적 문제를 일으키는 상황에 많이 노출되어 있는 것 같다. 우울증이 자살에 대한 욕구를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는데, 우리나라는 청소년 사망률 1위가 자살이고, 자살률은 20-30대까지 증가하는 추세이다. 정신적 문제는 스스로를 파괴하는 자살 이외에도 다른 사람을 무자비하게 폭행하거나 죽이는 분노로 표출되기도 한다. 자살도 세상에 대한 분노를 외부가 아닌 자신에게 쏟는 것이라는 점에서 방향만 다를 뿐 성냄의 다른 표현이다. 현대의 가장 흔한 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우울증도 분노의 결과이다. 무엇인가 간절히 원하는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할 때, 그 상황에 대해 절망을 화를 내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이 반복되면 우울증이 발생한다고 한다.

우리는 화를 내는 사람을 두려워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화를 낸다는 것은 두려움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철학자 누스바움은 이야기하였다. 두려움은 자기중심적인 사고로 돌려놓는다. 그래서 당연히 내가 생각한대로 상대방이 해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해주지 않았을 때 그 두려움을 화로 표현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내 생각대로 움직여주어야 한다는 이러한 유아적 생각은 어렸을 때의 무기력했던 경험으로부터 나온다고 한다. 이러한 즉각적 생존의 두려움은 내가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는 사람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피해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게 되고, 자신이 받았다고 착각하는 피해를 갚으려는 응보적 소망이 공격성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야기했다.

그렇기 때문에 분노는 근본적인 모순을 가지고 악순환을 시작하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화를 내면 문제가 해결되기 보다는 오히려 악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더 화가 나지 않겠는가? 그러니 상대방을 자기 요구의 확장으로 인식하고 화를 내면서 조정하여 자기 뜻대로 하려는 마음에서 벗어나,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는 의지를 가지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분노에서 벗어나 건강한 자아를 형성하게 된다. 결국 우리 내면에 있는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분노에서 멀어질 수 있고, 그러한 노력을 통해 현대에 만연한 정신적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필자도 한동안 현대의 질병인 불면증에 시달렸다. 무언가 내가 원하는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서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못 벗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수면제를 처방받기 위해 정신과에 예약을 하려고 했을 때, 내가 전화를 걸었던 모든 정신과에서 예약이 너무 많아 최소한 2-3달 뒤에야 예약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고 놀랐다. 이렇게 많은 정신과가 밀려드는 환자들 때문에 신규 환자를 받을 수가 없다니!

다른 방법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책을 읽어주는 유튜브를 틀고 잠을 청했다. 마치 어렸을 때, 잠자리에 들면 엄마가 책을 읽어주면서 잠이 들도록 했던 것처럼, 이 방법이 곧잘 먹혔다. 머릿속으로 어렸을 때 상상했던 동화 속 이야기들을 생각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조금 스토리를 만들다 보면 어느새 잠이 들곤 했다. 아마도 내 어린 시절의 경험을 소환하면서 이 나이가 되도록 마음속에 무기력했던 유아 시절의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내 분노의 원인을 생각하고 다스리는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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