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아침에] 김영애 수필가

여름의 끝자락에 안성 서운산 자락의 석남사 고찰에 다녀왔다. 절 마당에 봉숭아꽃과 맨드라미와 분꽃이 가득 피어있다. 그 옛날 어릴 적 유년의 꽃밭을 보는 듯이 반가웠다. 요즘은 흔히 만날 수 없는 추억의 꽃들이다. 아파트 화단에는 장미꽃이 어울리고 절 마당 돌담 아래에는 저 옛날 꽃들이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산사의 옛 정취와 어우러져서 그런듯하다. 바람 소리 물소리 풍경소리를 들으면서 오랜 친구와 동심의 뜰을 걸어보았다.

어릴 적에 매미가 발악을 하듯이 울어대던 이즈음, 저녁 해가 어스름해지면 마당에 멍석이 펴지고 엄마의 손길은 분주해진다. 해마다 여름이면 치러지는 연례행사 의식처럼 봉숭아꽃 물들이기를 하였다. 낮에 꽃밭에서 봉숭아꽃과 잎을 따서 비들비들 말려두었다가 명반을 섞어서 돌확에 넣고 곱게 찧었다. 차례로 손을 내밀고 붉은 꽃물이 뚝뚝 떨어지는 봉숭아를 손톱에 올린 후 비닐로 싸서 실로 칭칭 동여맸다. 그렇게 다섯 남매가 하고 나서 멍석에 나란히 눕고 나면 밤하늘에 별이 총총 떴다.

누워서 별을 헤며 먹던 옥수수와 포슬포슬 찐 감자도 맛이 있었다. 모깃불 타는 소리 그 향기도 그립다. 밤이 깊어지면 가을 풀벌레가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봉숭아꽃 물들이기는 여름과의 이별하는 의식이기도 했다. 엄마의 봉숭아꽃 물들이기 연중행사는 우리들이 성장해서 엄마 곁을 떠나올 때까지 이어졌었다.

여학생 때에 손톱에 물든 봉숭아꽃물을 서로 자랑하면서 마음속으로 막연히 첫사랑을 상상했었다. 첫눈이 올 때까지 봉숭아 꽃물이 손톱에 남아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손톱에 초승달 눈썹만큼 봉숭아 꽃물이 남아있을 때쯤이면 어김없이 첫눈이 내렸었다.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은 나에게는 그냥 전설일 뿐이었다. 엄마 품을 떠난 그 후로 나는 봉숭아꽃물을 들여본 기억이 없었다.

네일아트샵에서 손톱과 발톱을 관리하고 손톱에 예쁜 매니큐어를 칠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 옛날 신부화장을 할 때 얼결에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해본 그 후로는 한 번도 손톱에 색을 들여본 적이 없었다. 손톱이 조금만 길어져도 참을 수 없어 하는 나에게는 어울리지도 않는 일이다. 친구들이 정기적으로 미용실에 다니듯이 네일아트샵에도 다니면서 손톱을 가꾸고 다른 칼라와 모양으로 매니큐어를 칠한 모습을 보면 이쁘고 부럽기도 하였다. 하지만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멋내기와는 거리가 멀고 미적 감각이 부족한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스스로 들었다. 파티문화가 주로인 서양에서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서 우아하게 차려입고 마무리단계가 손톱을 단장하는 것이 네일아트라고 한다.

봉숭아 꽃물로 나를 물들이던 그 순수의 시간들은 어디로 갔을까! 여리고 곱던 소녀의 손도, 섬섬옥수 여인의 손도 아닌 지금의 나의 손에는 세월의 주름과 흔적 같은 검버섯이 피었다. 봉숭아 꽃물을 들여주던 그날 밤 ‘손도 참 예쁘다’고 하시면서 여자는 손이 예쁘고 고와야 시집가서 곱게 사랑받으며 산다고 하시던 엄마의 말씀이 생각난다. 다섯 남매의 손에 꽃물을 들여주시면서 꽃물같이 곱고 아름다운 세상만을 살게 하고 싶었을 엄마의 마음을 생각하게 된다. 혹여 먹물같이 험한 세상에 물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그 여름의 의식을 치르셨을 거였다.

처서가 지나면서 푸르던 나무의 잎들이 시들시들 물기를 잃어간다. 가을이 저만치서 오고 있다. 지난여름은 지독한 사랑의 열병을 앓고 난 것처럼 혹독했다. 그러나 가을을 살면서 언제 아픈 적이 있었냐는 듯이 또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지나간 것은 잊혀지게 마련이다. 푸르던 나무들은 저마다의 다른 빛깔과 모습으로 물들어갈 것이다. 나의 가을도 노을빛 봉숭아 꽃물처럼 곱게 물들어가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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