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광장] 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낫 한 자루 값이 이천 원이다. 눈을 껌벅이며 다시 보아도 역시 이천 원이다. 백화점에서 고급 여성복의 가격에 동그라미 하나를 빼고 읽었다가 머쓱했던 기억보다 생경하다. 헛웃음이 나왔다. 이른 봄에 호미를 살 때도 호미 값이 이천 원이어서 놀랐는데, 그때는 정부에서 농민들에게 주는 특혜인 줄 만 알았었다. 수십 년 전 농사 지을 때, 낡은 호밋자루가 빠져서 일을 하다 말고 곤란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급한 대로 무명 헝겊을 호밋자루 빠진 틈새에 넣고 자루를 고정하여 사용하고는 했었다. 새 연장을 장만하는 일이 버거웠던 탓이었을 게다. 집에 오래된 호미가 몇 개 있어서 산소 풀 뽑을 때 더러 사용하였기에 근래에 농기구를 사 본 적이 없었다.

 이천 원짜리 낫을 세 자루 집어 들었다. 커피 한 잔 값이다. 적어도 올 한해는 그것들이 제 몫을 할 거라 여겼다. 물론 국산 호미는 그보다 훨씬 더 비싸게 거래되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주대장간’ 호미는 ‘아마존’에서 일곱 배 이상 비싸게 거래되었다. 어쩐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천 원짜리 낫을 산 이후 생활의 변화가 뚜렷하게 생겼다. 물론, 농지를 장만하느라 빚을 진 탓에 소비를 줄였지만, 그것은 빚을 갚기 위한 기본적인 전략이었다. 해외여행이라던가, 새로운 가구를 바꾼다던가, 크게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별 고민 없이 지출했던 그간의 습관을 멈추고, 원리금을 감당하기 위해 몇 년간은 내핍한 생활을 하고자 했었다. ‘여행은 가슴 떨릴 때 떠나는 것이지, 다리 떨릴 때 떠나는 게 아니라’라며 먼 나라 여행을 준비하는 후배들이 함께 떠나자는 유혹도 물리쳤다. 그렇지만 수시로 혼란했다.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사는 것이, 과연 잘한 것일까? 하루 만 보 걷기를 생활화한들, 늙어가는 몸을 과연 얼마나 늦출 수 있을지 우려가 밀려올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평생을 아끼고 살아온 덕에 그럭저럭 계획대로 원리금을 착실하게 줄여가고 있었다. 아끼느라 하지 못했던 자잘한 지출금지에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는데 이천 원짜리 낫을 사고부터는 완전히 생각이 달라졌다.

게다가 종자값은 얼마나 싼지, 여러 가지 채소를 밭에 뿌리기만 하면 시장에 가지 않고도 나누어가며 먹을 수 있을 만큼 수확이 많다는 것에 놀랍다. 종잣돈을 모으는 것이 부자가 되는 관문이라고 여기는데, 밭에서는 종잣돈이 주머닛돈 정도면 충분하다. 한번 사 먹을 상추쌈 값으로, 봄부터 여름 장마까지 시장에 가지 않아도 될 만큼 풍성하다. 몇 백 배, 몇 천 배로 불어나는 그것들의 생명력에 감탄하고, 감사해한다.

그동안 살면서 흥청망청 쓰며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낫 한 자루가 이천 원이고, 상추씨 한 봉지로 여름내 먹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는 일은 고령화에 대비하는 학습이기도 했다. 하여, 돈의 가치를 다시 찾고 있다. ‘둘이 커피를 마시면 낫이 여섯 자루야’ ‘집에서 밥해 먹기 싫어서 외식하면 낫이 열 자루네’ 수시로 낫과 호미로 소비를 가늠하다 보니 예전보다 더 짠순이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서대문 형무소 앞에 유관순열사 동상을 세웠는데 비용이 부족하여 유관순열사 기념사업회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는 말에 선뜻 오백만 원을 송금했다. 그런 지출에는 낫값이니, 호미 값이니 이런 말을 붙이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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