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커크, 더 이상 주한 불필요

 

언커크(유엔 한국부흥위원단)는 7일 상오 유엔 事務總長(사무총장)에게 제출한 年次(연차) 報告書(보고서)를 통해 언커크의 解體(해체)를 건의했다고 이날 公式(공식) 발표했다.

언커크는 이날 발표에서 南北(남북) 對話(대화) 등 지난 한햇동안의 韓半島(한반도) 政勢(정세) 추이를 감안, 언커크 會員國(회원국)들은 언커크의 韓國(한국) 駐在(주재)가 더 이상 요구되지 않고 있다는 신중한 判斷(판단)에 따라 이러한 結論(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히고 유엔은 平和(평화)와 安保(안보)를 保存(보존)하기 위해 韓半島에 대한 政治的(정치적) 사태를 監視(감시)하는데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어떠한 措置(조치)라도 취하도록 건의했다고 말했다.

언커크는 特(특)히 韓國의 平和的統一(평화적통일)을 促進(촉진)하는 모든 적절한 方法(방법)이 이용되어야 할 것을 요구하며 유엔은 自身(자신)의 力割(역할·役割의 오기) 무엇이어야 하는 것을 상상력과 融通性(융통성)을 갖고 評價(평가)하는 것을 中止(중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언커크는 또 權限(권한)이 미치는 限(한) 韓半島의 諸般(제반) 情勢(정세·政勢의 오기)를 定期的(정기적)으로 유엔에 通報(통보)해 왔고 유엔이 벌인 最上(최상)의 勞力(노력)에도 不拘(불구)하고 韓國의 平和的統一이 아직까지 證明(증명)되지 못했지만 언커크는 平和的統一의 必須條件(필수조건)인 南北間(남북간)의 平和를 꾸준히 조성해왔다고 밝혔다. (하략) <8784호·1973년 9월 8일자 1면>

 

언커크(UNCURK)는 ‘United Nations Commission for the Unification and Rehabilitation of Korea’의 약자다. 한국통일부흥위원단(韓國統一復興委員團)이라고도 부른다.

이 단체는 한국 전쟁으로 파괴된 대한민국 재건을 목적으로 1951년 세워진 유엔의 기구였다.

1954년 6월부터 1966년 4월까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옥인동에 있는 벽수산장 양관(洋館)을 청사로 사용하다가, 청사에 화재가 발생해 임시 청사로 외교연구원 건물을 썼다. 1969년 6월에 영등포구 영등포동의 신청사로 이전했다.

한국통일부흥위원단은 1948년 12월에 세워진 유엔 한국위원회가 해체된 후 만들어졌으며, 한국전쟁이 진행 중이던 1950년 10월 7일 5차 유엔총회에서 설치가 결의됐다.

이 단체는 한반도의 재건, 구호(救護), 통일, 민주정부 성립 등을 목표로 활동했다.

기사 내용을 보면 언커크는 자신의 단체 해체를 건의하는 것으로 기술돼 있다. 그리고 1973년 12월 28차 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 결의로 언커크는 해체된다.

언커크의 활동 중에는 유엔묘지의 관리가 포함돼 있었다.

부산 유엔 기념 공원은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인데, 이 곳엔 세계평화와 자유의 대의를 위해 생명을 바친 유엔군 전몰장병들이 영면해 있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이듬해인 1951년 1월 전사자 매장을 위해 유엔군 사령부가 조성했으며, 같은 해 4월 묘지가 완공됨에 따라 개성, 인천, 대전, 대구, 밀양, 마산 등지에 가매장되어 있던 유엔군 전몰장병들의 유해를 안장하기 시작했다.

1959년 11월 언커크가 이 공원을 관리했으나, 1973년 12월 해체됨에 따라 1974년부터 유엔 기념 공원 국제관리위원회로 위임됐다. /김명기 편집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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