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시평] 김희한 수필가

뜬금없다. 분명 바른 판단을 했다 싶은데 핑계를 여기저기에 놓고 허둥댔다. 소금 덜 넣은 달걀부침 정도의 관심만 가졌던 이사다. 공간 이동에 대한 두려운 마음과 살고 있던 집에 대한 애착이 카메라를 들게 했나 보다.

집 안 구석구석을 담았다. ‘떠남이 아니라 물러섬이다. 지경을 넓혀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 내가 앉은 자리를 내어주고, 채우려고 애를 썼던 마음을 내리고, 주변에 잡다한 것들을 가지치기해야 할 때다.’라고 마음을 달랬다.

다용도실 구석에 있던 놋대야를 꺼냈다. 엄마가 고향 살림을 정리하며 주신 것이다. ‘반질반질하게 닦아 노랑 어리연꽃 몇 띄워놓고 살리라.’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받았다. 연꽃은 고사하고 대야에 물 한 번 담지 못하도록 나는 무엇 때문에 분주했었나? 오석烏石으로 만든 다듬잇돌은 어찌할까? 매미 소리와 겨루기라도 하듯 복숭아나무가 보이는 대청에서 방망이를 올리던 엄마의 뒷모습이 보였다.

구멍 난 창호지 문 확 뜯어내고 어머니는 새 창에 코스모스 두엇 넣듯, 꿈을 붙이며 살아오셨다. 일제 강점기를 등짐에 담아내셨고 한국전쟁엔 찬바람과 공포를 안고 사셨다. 남편과 아들이 벌인 사업 실패에도 얼굴색 한번 바꾸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우리가 디딜 발판을 놓으셨다. 엄마의 마당엔 병아리를 품고 품을 벌리던 암탉의 봄도 있었고, 곡식 낟가리 위에 팔랑팔랑 떨어지던 노란 미루나무 가을이 있었고, 빨랫줄에 꽝꽝 언 앞치마가 빈집을 지키던 겨울이 있었다.

임무를 다 마친 육신은 물기 마른 나뭇잎이 되어 아들 집으로 오셨다. 나는 엄마의 쪽진 머리를 자르자고 졸랐다. 엄마는 몇 번 가위질에 힘없이 떨어진 머리칼을 소중히 모으셨다. 그리곤 천천히 금비녀를 싸셨다. 당신을 위한 단 하나의 호사를 내려놓는 의식이었다.

나는 엄마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 초등학교 졸업 후 부모님 곁을 떠났다. 방학 동안 잠시 집에 머물고 졸업 후 바로 직장 생활과 함께 결혼했다. 전화도 없었을 시기인지라 시골집을 정리하고 오빠 집으로 들어오시던 날도 기억에 없다. 둘째 아이를 배고 시부모와 살면서 먼 길을 통근하던 나를 배려하신 일이다.

‘엄마가 했던 고향 집과의 이별’을 생각하며 이곳저곳을 더듬었다. 책장 가득 있던 책들은 진작 남편 손에 떨려 나갔다. 매달 쌓이는 월간지도 꼭꼭 묶여 나갔다. 눈에 밟히는 것들만 남겼지만, 그들도 정리해야 할 일거리다. 책장 옆의 피아노에 눈이 갔다. 음악에 재능이 없는 내가 왜 시집올 때 피아노를 고집했는지 모른다. 엄마는 한마디 말도 없이 피아노를 얹어주셨다. 여름 겨울 없이 땀 흘린 농작물 팔아 장만한 것이었다. 피아노 모서리의 흠집을 더듬었다. 그마저 아이들이 남긴 추억이었다. 인삼주와 더덕주는 누구를 줄까? 간직만 하다가 구식이 된 그릇들을 쓸 사람이 있을까? 물건 하나하나에 아주 적은 액수를 써서 대문 밖에 놓을까?

여섯 밤을 자고 일어난 것 같은 세월이었다. 아이들 크는 것 좋아하듯이 집 안에 물건 쌓이는 것에 어깨 세웠던 때도 있었다. 이 집으로 이사 오던 날, 큰 트럭에 가득 싣고서도 짐이 많아 목청 세워 차를 더 불렀다. 남편은 대문에 처음 문패를 붙이며 울먹였다. 내 어린 날이 가끔 가슴을 치듯 아이들도 자기가 머물던 공간을 그리워할까? 집 안팎으로 후다닥거리며 뛰놀던 아이들 소리, 튀겨 놓기가 무섭게 없어지던 통닭, 감나무 아래 놓아둔 자전거에 거미줄이 있다고 호들갑을 떨던 아들. 유리창에 입김 불어 놓고 손가락 뻗어 추억을 써보았다.

설거지도 미루고 커피 한 잔으로 설레던 봄 뜰, 우렁차게 쏟아지는 비를 손가락 장단으로 맞던 여름, 햇빛과 열애 뒤 슬그머니 얼굴 붉히며 배를 불리던 대봉감의 가을, 하얀 겨울의 깊은 침묵까지 사랑했던 곳이다. 사춘기 아들이 늦은 밤 넘어오던 담이 있고, 가슴 졸이며 기다리던 대문이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들어간 방문을 밖에서 잠그고, 아들의 매 맞는 소리에 함께 울던 손잡이가 있다.

이제 내가 떠난 공간에선 누군가 그들만의 웃음이 떨어지는 마당이 만들어질 것이고, 아이들이 넘어지며 일어서는 연습을 하겠지. 그리고 그 부모도 같이 성숙해 갈 것이다. 해맑은 미소를 가진 새댁과 감나무 가지치기를 잘하는 젊은이가, 여름 도랑물 내려가는 소리로 살았으면 좋겠다. 아주 가끔 시어머니가 와서 단맛 도는 간장 항아리 햇살 좋은 곳으로 옮겨놓고, 손 탁탁 털며 미소 지었으면 좋겠다.

바람이 분다. 어린 날 단옥수수 껍질 벗겨 단물 빨아먹고 뱉을 때 힘 보태던 바람이다. 이제 그 바람 따라 어디든 가야겠다. 바람 멎는 곳에 잠시 머물다 또 다른 바람이 불면, 씩 웃어주고 자리를 내어줄 게다. 붉은 담쟁이 오르는 담 위로, 누런 길고양이 하나 사뿐 오른다. 고양이 따라가던 카메라 렌즈도 불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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