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양승복 수필가

서청주 톨게이트로 들어가 신탄진 톨게이트로 빠져 나오란다.

잠도 깨지 않은 상태로 전화를 받았으니 늘 이용하던 서청주 톨게이트가 생각나지 않는다. 또 전화벨이 울렸다. 이번에는 남청주 톨게이트로 빠지란다. 산사태가 나 다니던 길이 막혔으니 고속도로로 돌아오라는 비상연락이다.

빗줄기는 한 치 오차도 없이 같은 속도로 줄기차게 쏟아져 내린다. 산이 무너져 내려 지나가던 차를 덮치는 사고로 길이 막혔으니 조심해서 오라 한다. 그런 줄도 모르고 흔들리지 않은 빗줄기 소리를 자장가 삼아 숙면하고 말았으니. 잠도 덜 깬 상태에서 남청주인지 서청주인지 구별도 못하고 겁에 질리고 말았다. 밖은 깜깜한데 빗소리는 지축을 흔들 기세니 위기를 극복할 정신을 찾아와 무장을 했다.

직장인이 가져야 하는 책임감의 무게는 시동을 걸게 되고, 장대 같은 빗줄기는 유리를 부셔 버릴 것만 같아서 빠른 속도로 윈도우브러쉬를 휘둘러 물기를 쫓아냈다. 두렵다. 빗소리가 가다듬은 정신을 산만하게 하고 늘 다니던 길이 아니고 돌아간다는 부담에 마음이 무거웠다.

고속도로도 만만하지 않았다. 톨게이트를 벗어나 대전가는 길로 접어드는 일도 어려웠다. 퍼붓는 굵은 빗줄기는 고속도로를 물바다를 만들어 버렸다. 추월해가는 차들이 튕기는 물 폭탄에 순간 눈을 감게 되고, 앞이 보이지 않아 핸들이 휘청거려 어깨가 뻐근하도록 꽉 움켜쥐고 천천히 달렸다.

바퀴는 빗물에 미끄럼을 타고 앞은 보이지 않고, 초보 운전딱지를 달고 다니던 때와 같이 경직된 몸을 앞으로 구부리고 핸들이 최대한 흔들리지 않도록 집중했다. 빗줄기에 흔들리는 나무들은 유령으로 변하여 정신을 흔들고, 앞서가는 차가 흘리는 희미한 깜빡이가 그나마 길잡이가 되었다.

중부고속도로를 지나 경부로 들어서자 물 빠짐이 좋아지고 길이 넓어지면서 시야가 조금 편안해졌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어둠은 계속되고 두려움은 가시지 않고 남청주로 빠져 나가는 안내판도 잘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도 톨게이트를 잘 빠져나와 국도에 있는 음식점 간판이 보이자 무심히 지나쳐 버리던 그곳이 중요한 이정표가 되어 나를 안심시켰다.

병원으로 들어가는 길은 더 험했다. 하천이 넘쳐 길까지 차올랐고, 올라가는 길은 산이 머금지 못하고 뱉어낸 물이 빠른 속도로 흘려 내렸다. 그래도 내가 늘 다니던 낯익은 길이고, 목적지가 바로 앞에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병원 정문을 들어서자 나무가 쓰러져 길을 막아 올라갈 수가 없다며 직원분이 우비를 쓰고 안내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있나. 무서운 것은 나 혼자만의 몫은 아니었다. 바지를 걷고 산길로 돌아 올라가면서 살아 왔구나 하는 생각에 긴장이 풀리고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도착하여 자연이 주는 무서운 경고에 살아 있다는 안도의 숨을 쉬고 있는 사이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튼튼한 둑도 엄청나게 퍼부어대는 빗물을 감당하지 못하는데, 포화상태의 빗물은 간이로 막아 놓은 둑을 뚫고 무섭게 흘러나와 순식간에 지하차도를 점령했단다.

지하차도를 지나던 차들은 몰려오는 수마를 이기지 못했다고 한다. 이렇게 허망할 수가 있나.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던 부지런한 사람들. 그들은 가고자 했던 곳으로 가지 못하고 물속에 잠겨버렸다.

그게 어디든 무슨 일로 가든 빗속을 뚫고 꼭 가야만 했던 그들의 삶이었는데. 그들이 가고자 했던 소중한 그곳으로 가지 못하고 잠들었다. 기진한 몸을 가눌 수 없어 멍하게 앉아 있는데 남편이 전화를 했다.

“ 여보 잘 간 거야?” “응 무사히 도착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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