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민병훈 전 국립청주박물관장

우암산 기슭에 자리 잡은 국립청주박물관은 주위의 자연 경관과 문화 유산의 공생을 도모하는 조형물이다. 재래의 여타 국립 문화 기관들이 좌우 대칭의 정연함과 웅장함을 표방하는 것이었다면 청주박물관 건물은 우암산 숲의 능선을 넘지 않도록 배려하며 관람객이 숲길을 거니는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설계됐다. 대지 자체가 조각이며 박물관 건물 역시 그 연장선 상에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지난 7월 25일부터 개최 중인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기증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는 이미 서울과 광주·대구의 국립박물관에서도 개최된 바 있지만 국립청주박물관에서만 접할 수 있는 전시의 백미가 바로 다양한 형태와 종류로 구성된 석조 문화재다. 그리고 박물관의 여러 건물을 배경으로 자연 환경을 고려하며 배치한 이들 석물은 그야말로 우암산을 조각의 받침대로 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박물관 뜰에는 문인석과 무인석, 그리고 마을을 수호하는 벅수, 다양한 동자석과 향로석 등이 도처에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으며 이들 석물은 묘역을 지키는 수호신의 의미와 망자의 영생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가운데 백미 중의 백미는 월연석(月蓮石)이다.
전라남도와 경상남도 지역 해안가 분묘에 많이 조성돼 있다고 전해지는 월연석은 그 형태가 반달의 모습을 하고 있고 그 내부에 피어오르는 연꽃의 모습이 많이 조각돼 있어 이러한 명칭으로 불리게 된 듯하다.

그런데 월연석의 형상이나 내부의 조각, 특히 두 마리 용(龍)이 중심의 여의주를 마주보고 이를 다투는 듯한 모습의 조각은 조선 시대의 왕실이나 공신들의 묘에 세워져 있는 석비 비신(碑身) 위의 운용문(雲龍文) 머릿돌과 그 형태가 흡사하다.

따라서 이들 월연석은 비신 위에 이수를 얹을 수 있는 신분적 제한이 따랐던 조선 시대에 묘비를 대신하는 장식 석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월연석 내부의 조각 장식 가운데 가장 많이 나타나는 운용문 장식과 연화문 장식은 전자가 망자의 영혼을 수호하는 기원이 담겨져 있는 것이라면 후자의 경우 극락왕생, 즉 극락에서의 연화화생(蓮花化生)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포도 문양 월연석은 시원하게 뻗은 가지에 많은 열매가 달린 포도송이가 묘사돼 있어 전통 와당의 포도당초 문양과 마찬가지로 자손의 번성과 가세의 번창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진 것으로 보인다.

이들 월연석 가운데에는 중앙에 나무와 그 위에 앉아 있는 새, 그리고 우측 아래에는 빈 말이, 좌측 아래에는 전각이 묘사돼 있는 특이한 형태의 것이 있다. 중앙의 높게 솟은 나무는 유라시아의 각 지역에 나타나는 생명수를 표현한 것이며 말과 새는 망자의 혼을 극락으로 실어 나르는 메신저이고 전각은 망자가 내세에서 편안한 삶을 보낼 수 있는 휴식처로 여겨진다. 이러한 도상 배치는 마치 조선 시대 말기의 민화 문자도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며 당시까지 민간에 널리 확산돼 있었던 정토신앙의 양상을 말해주고 있다.

추석을 맞이해 가족과 함께 새롭게 마련된 이들 석조 문화재를 감상하며 조상의 명복을 빌고 우암산의 자연 속에서 문화 유산과의 교감을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 특별전은 10월 29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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