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이희영 배재대학교 기초교육부 교수

대학교육 혁신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학문 간 벽을 허물어 융합교육을 시행해야 한다. 학생의 개별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맞춤형 교육을 시행해야 한다. 무전공 등의 제도를 도입하여 학습자의 선택권을 높여야 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프로젝트형 교수법이 도입되어야 한다. 이런 의견들은 하나같이 느리게 변화하는 대학 사회의 체질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다. 

이 뿐 아니다. 대학의 교육이 지역 산업과 연계하여 특성화를 꾀해야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지자체와 연계하여 지역 정주형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등, 지역 사회의 혁신의 거점으로서 기능 역시 요구받고 있다. 말 그대로 대학이 할 일이 많은 시대이다. 

대학으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다보면 무엇하나 잘못된 의견이 없다. 이런 의견들이 모두 실현될 수 있다면 말 그대로 지역을 살리고 세계를 선도하는 대학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모든 혁신을 몇 년 만에 이룰 수 있는가' 하는 비관적인 생각도 든다. 

솔직하게 말하면 대학의 혁신을 위해서 전제되어야 할 것들이 있다. 모두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수한 교수진, 유연하고 경쟁력 있는 교육과정, 학생들을 위한 정주 여건과 지원 체계 등이 모든 것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서는 필수불가결로 예산이 필요하다. 

하지만 십수 년째 등록금이 동결된 대학에는 그런 예산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에서 지원하는 다양한 이름의 대학지원사업의 수주와 운영은 당장 눈앞에 당면한 과제이고, 그렇기 때문에 대학의 교수들은 교육과 연구에 몰두할 시간을 줄여 보고서를 써야한다. 

대학의 혁신을 담보하는 보고서를 쓰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지 마시라. 고백하면 혁신에는 정답이 있다. 그 대학이 가지고 있는 역량과 추구하는 교육적 가치보다는 사업의 발주처가 요구가 중요하다. 그 요구가 곧 혁신의 방향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정부지원사업이 본격화된 십수 년간 대학의 교육은 유행이 되었다. 모두 같은 유행을 쫓다보니 대학들은 비슷한 학과, 비슷한 교육과정, 비슷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정부의 재정지원이 중요한 지역의 대학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상황에 올해 정부가 시행하는 RISE사업과 글로컬 사업은 주목할 만하다. 중앙 정부에서 주도했던 대학 재정 지원 체계를 지방 정부로 이양하겠다는 것이 골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역사회와 연계하여 정말 제대로 된 특성화를 꾀하라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RISE 사업과 글로컬 사업에 선정된 기획안 역시 들여다보면 비슷한 지점이 많다. 학문 중심의 계열 파괴를 통한 융합교육, 대학 캠퍼스가 있는 지역의 산업단지와의 연계한 첨단 산업, 공유와 협력이라는 이름의 대학 통합, 디지털 대전환을 위한 교육 시스템 구축 등이다. 지금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교육혁신의 방향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학의 재정 지원 주체가 지방 정부로 이양된다고 한들, 정말 혁신적이고 특성화된 교육 모델이 나올 수 있을까 싶다. 이런 것들을 보면 대학의 혁신을 위해서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은 교육이 정치에서 멀어지는 일이 아닐까 싶다. 

아이가 성장하고 성숙하는 데에 필요한 것은 지속적인 평가를 통한 다그침이 아니라 무던한 기다림임을 우리는 모르지 않다. 이는 대학에도 통용되는 원리일 것이다. 대학이 스스로 혁신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과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 그 노력의 수혜의 대상은 대학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 세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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