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준명 충북도 산림녹지과 주무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은 '국가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결국 제도'라고 했다. 지배계층만을 위한 수탈적이고 착취적인 제도는 정체와 빈곤을 낳고, 모두를 끌어안는 포용적인 정치·경제 제도는 나라의 발전을 가져온다고 역설한다. 아울러, 누구나 재능을 발휘할 수 있게 동등한 권한과 기회를 갖는 제도를 수립하는 것이 국가 번영의 열쇠라고 주장한다. 조직의 성패도 마찬가지다. 

직원들을 존중하고 포용하는 문화는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한다. 또, 이를 제도화하면 다양한 아이디어와 시각을 공유하게 되어 혁신과 문제해결 능력이 향상된다. 하지만 과거 조직문화는 계층적인 구조로 의사결정이 상위 집단에 집중되어 직원들에 대한 포용성이 부족했다.

조직문화를 형성하고 유지시키는데 필요한 것이 회식이다. 2000년대 초 회식은 사회적 관계 강화와 조직의 단합을 높이기 위한다는 명분 아래 개인의 일정보다 우선시 되었다. 매주·매달 시도 때도 없이 개최되는 과도한 회식은 개인의 사생활을 간섭하고 업무와 생활의 불균형을 초래했다. 이때 빠지지 않는 것이 강제적 건배사였다. 모든 직원이 돌아가며 건배사를 외쳤고, 건배사를 준비하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했다. 행복과 축복, 존경과 예의의 표현으로 또는 우정과 화합의 의미로 건배사를 제안해야 했지만, 필자에게는 오늘도 외쳐야만 하는 구호로 느낀 적이 많았다. 그 당시 회식과 건배사는 사회적 상호작용과 연대감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제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도 모든 이들이 좋아하는 조직의 의례로 존중받고 있었을 것이다.

20년이 지난 지금의 조직문화는 수직에서 수평으로, 착취에서 포용으로 변했다. 기성 세대와 MZ 세대가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편견과 고정관념을 없애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세대 간 소통의 자리는 점점 없어지고 있다. 세계적인 유행병 코로나19는 우리의 삶과 사회 구조를 변화시켰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방역 수칙이 몸에 밴 생활 패턴은 만남을 멀리하게 했고 잘못된 회식문화의 편린이 모임을 주저하게 한다. 그러나 회식은 필요하다. 회식은 업무 상황에서 말하기 어려운 생각들을 자유로운 대화로 풀어갈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한다. 가까운 거리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므로 신뢰를 구축하고 더 나은 관계를 형성하게 만든다. 이는 조직의 문제 해결 능력을 향상시키고 업무협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건배사 역시 필요하다. 기원을 보면 술자리에서 주도자의 신호와 함께 술을 마시며 잔을 비우는 행위를 건배(乾杯)라고 하고, 이 순간을 기념하기 위한 특별한 발언 또는 메시지를 건배사라 한다. 잔을 부딪칠 때 서로의 술이 섞이기 때문에 독을 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라는 일설도 있지만, 과거 건배는 자연과 신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었고 사회적 연결을 나타내는 의식적인 행위였다. 

'스토리 건배사'의 저자 김미경씨는 건배사를 '세상에서 가장 짧고 열정적인 폭발력을 가진 말하기'라고 정의했다. 이 작은 고백이 나를 표현하고 생각을 공유함으로써 친밀감 형성과 서로 간 더 나은 연결을 형성하는데 기여한다. 순수한 의미를 잃고 변질되었던 회식과 건배사는 잊자. 조직문화 발전과 우리의 행복을 위해 회식과 건배사의 슬기로운 부활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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