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양승복 수필가

친구라 하기에는 거리가 있고 말을 섞은 기억이 없으니 아는 사람이라 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그 아이가 꽃을 피우지 못하고 일찍이 시들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얼음조각이 가슴을 찌르듯이 아려왔다. 나는 학창시절이 밝은 햇살만 있는 줄 알았는데 어두운 음달도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동기동창인 그 아이에 대한 책임감이랄까 아니면 미안함 때문이랄까. 여하튼 나는 그 아이 마음속에 들어가 우울이라는 우물에 한동안 빠져 있었다. 그러다 세월 속에 서서히 색은 바래고, 내가 정신과에 근무하면서 그 기억이 다시 고개를 들고 일어났다.

하늘거리는 코스모스를 보고 있으면 툭 하고 그 아이가 튀어나와 손을 흔들기도 하여 먼 길을 돌아 이제는 아는 사람이 아닌 정다운 친구가 된 것 같다. 키가 크고 말라 코스모스를 연상시키는 그 아이와는 성격도 다르고 친구의 부류가 달라 엉킴도 없었다. 학창 시절은 모두가 친구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 키가 큰 아이들, 작은 아이들, 노는 아이들, 끼리끼리 취향이 있어 누가 이어주지 않아도 잘도 찾아 뭉쳐 다닌다.

체육시간에 무리지어 재잘거리는 사이에 유난히 하얀 그 아이는 햇살을 피하려 손을 이마에 대고 눈을 찡그리고 혼자 있었다. 그 사진 같은 기억이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정신병원으로 보내졌다는 소식을 듣자 증명사진처럼 내 가슴에 박혔다. 왜 그때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내가 담당한 어느 환자의 기록에는 사회로부터 거부당한 생활이라고 적혀있었다. 착하고 여린 그는 학교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 혼자였다 한다. 학교생활은 가족이라는 둥지를 떠나 처음으로 관계를 만들며 사회에 적응해 나가는 시작이고, 고등학교 생활은 사회에 나와서도 이어지는 중요한 친구를 만드는 시간인데. 쑥쑥 커야 하는 이 시간에 홀로된 외로움과 무서움이 성장판을 짓누르고 죽고 싶은 마음을 안고 산다면, 생활은 자발적인 격리로 이어지고 그로 인한 우울은 가슴에 구멍을 파고 숨어들 것이다.

그 세상이 얼마나 힘들면 뇌의 회로가 방향을 잃고 헤매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일까. 자살로 이어지는 그의 생활에 부모님은 병원에 가둘 수밖에 없었다. 기질적 문제도 있겠지만 그는 너무나 착하고 여린 아이였다. 각자 그대로가 아름다움이 있는데... 왜 간절하게 큰 소리로 울어보지 않았는지. 발버둥 치며 달려들지 않았는지. 숨어버리면 덜 자란 마음은 고독을 감당하지 못하고 잡아먹히고 마는데 말이다.

어느 병원 구석진 그늘에 앉아 망상 속에서 친구를 만들어 이야기하고 있을지도 모를 친구야. 꽃봉오리 속 꽃잎은 부풀어 올랐는데 꽃망울 터트릴 힘을 잃고 시들어 간 내 친구야. 미안하고 미안하다. 왕따는 아니었지만 고요 속에 숨어 있는 너의 마음에 손을 내밀어 주지 못해서 말이다.

배려하고 산다는 것은 두루 살피는 마음일 것이다. 양보하며 산다는 것은 원만한 관계를 위한 삶의 수단이지만 손 벌려 보듬어 살핀다는 것은 성숙한 인간애를 필요로 한다. 늘 복기하며 부족한 마음에 물을 주려고 글을 쓰는지도 모른다.

잊고 살아온 어떤 날이 물 위에 피어있는 수련처럼 가슴에 떠오를 때가 있다. 그것이 어찌 좋은 일들만 있겠는가. 스쳐간 인연들이 떠올랐을 때 빙그레 웃을 수 있는 인연들이면 좋겠다.

친구야 아름다운 가을날이다.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와 함께 드높은 하늘을 향해 자유로움을 마음껏 펼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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