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웅칼럼] 김진웅 수필가

가을 산하(山河)가 손짓하여 나도 모르게 산에 오르며 깊어가는 가을에 사색과 성찰에 잠긴다. 아침저녁에는 추울 정도이고, 아직 단풍철은 아니지만 성급한 나뭇잎이 산책로에 흩날리고, 월동준비를 하는 다람쥐가 알밤을 나르는 걸 보니 가을이 깊어감을 알게 된다.

경사가 급한 오르막을 오르려니 다리가 뻐근하다. “여행은 가슴이 떨릴 때 가야지 다리가 떨릴 때 가면 안 됩니다.”란 말이 생각나 미소를 지어본다.

대부분의 사람이 젊어서는 열심히 일해야 하고, 자녀들 공부도 시켜야 하고, 결혼도 시켜야 하고, 할 일이 많아 ‘산 넘어 산’이니 여행은 쉬운 게 아니다. 나중에 시집·장가 다 보내고 그때나 간다고 생각하지만, 나중은 없다고 한다. 세상에 가장 허망한 약속이 바로 ‘나중에’라고 하지 않는가. 어떤 사람과 약속하기 어려울 때 ‘나중에 하자.’고 미룬 것이 실행되었나 톺아본다. 무엇인가 하고 싶으면 바로 지금 당장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것을 거듭 알게 된다.

영어로 ‘present’는 ‘현재’라는 뜻인데, ‘선물’이라는 뜻도 있듯이 우리에게 주어진 ‘현재’라는 시간은 그 자체가 선물임을 깨닫는다. 또한, ‘여기’도 소중하니 ‘지금 여기에서’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행복해야 하겠다. 오늘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은 내일도 행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 하나 명심하여야 할 것은 나의 행복을 자식에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자식이 자주 찾아와 효도하면 행복하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으면 불행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껴안을 줄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자식들은 자라면서 온갖 재롱을 피우고 순간순간 예쁜 모습을 보일 때 이미 효도를 다 하였다고 여기는 것이 현명하다는 말도 듣곤 한다. 필자도 딸을 둘 낳은 후, 고대하던 아들이 태어났을 때 얼마나 기뻤던가. 희열감에 들떠 이른 봄철에 선풍기까지 사다 놓지 않았던가.

아리스토텔레스 말씀처럼 자기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진정으로 행복해지고 싶다면, 가만히 앉아서 누가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만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정신 상태부터 바꾸고,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내가 알아서 사 먹고, 행복해지고 싶다면 지금 당장 행복한 일을 만들어야 하겠다. 될 수 있는 대로 나중으로 미루지 말고 ‘지금 여기’가 나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임을 잊지 말고 사랑과 행복을 차지하자. 주어진 인생의 시간을 생각하면 사랑할 시간도 부족한데 미워할 시간을 갖는다는 건 너무도 불행한 일일 테니…….

산에서 내려와 또 한 번 감동한다. 지난여름 장마 때 급류에 휩쓸렸던 무심천 둔치의 억새밭이 경이롭다. 눈이 시리도록 높고 푸른 하늘 아래 군무(群舞)하는 은빛 물결의 억새꽃 향연(饗宴)에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빠져들며 ‘행복은 밖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을 거듭 깨닫게 된다. 얼마 전 감명 깊게 읽은 법정 스님의 말씀이 와락와락 가슴에 와닿는다.

누구나 갈망하는 행복은 어디에서 올까. 행복은 밖에서 오지 않는다. 행복은 우리들 마음속에서 우러나고 자라난다. 불행이나 불운을 겪었을 때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남을 원망하는 그 마음 자체가 곧 불행이다. 행복은 누가 만들어서 갖다주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만들어간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세상은 우리 생각과 행위가 만들어낸 결과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천당도 만들고 지옥도 만든다는 것이다.

사람은 순간순간 그가 지난 생각대로 되어간다. 이것이 업(카르마)의 흐름이요 그 법칙이다. 사람에게는 그 자신만이 지니고 있는 특성이 있다. 그것은 우주가 그에게 준 선물이며 그 자신의 보물이다. 그 특성을 마음껏 발휘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긍정적인 사고가 받쳐주어야 한다.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일마다 잘 풀린다. 그러나 매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될 일도 안 되고 일마다 꼬인다.

이 세상은 공평무사하게 누구에게나 똑같이 하루 스물네 시간이 주어져 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인생은 달라진다. 이 귀중한 우주의 선물을 우리는 순간순간 어떻게 쓰고 있는가 긍정적으로 쓰고 있는가 부정적으로 쓰고 있는가. 밝은 마음으로 쓰고 있는지 어두운 마음으로 쓰고 있는지 수시로 물어야 한다. 우리가 지닌 생각이 우리 집안을 만들고 이 세상을 만들어 간다. 명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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