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육정숙 수필가

여름의 뜨거운 열기는 여전한 듯 싶은데 귀밑머리를 스치는 바람이 제법 산산하다. 바람의 매력에 빠져 산책을 즐기다가 활짝 피어있는 연분홍 메꽃을 보았다. 지나는 길에 언뜻 보면 나팔꽃이라 할 것 같다. 그녀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이른 아침이 아닌 한낮에 활짝 피어있었기에 나팔꽃이 아닌 메꽃임을 쉬이 구분할 수 있었다.

메꽃은 고개를 뒤로 젖히고 바라보아야 할 만큼의 큰 상수리나무 둥치에 가냘픈 넝쿨을 감으며 오르고 있었다. 여린 넝쿨로 부드럽게 감싸 안긴 상수리나무가 간지러운 듯 촤르르 잎을 흔들어대니 툭 툭 상수리 열매가 떨어져 내린다. 떨어진 상수리 열매를 집으려고 허리를 구부리니 메꽃 옆으로 바닥에 깔려 자라는 민들레가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노랗게 웃어준다. 이곳은 봄이 머물고 있었다.

올봄엔 수많은 꿀벌들이 죽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봄이 실종되고 날씨가 갑자기 올라가니 일벌들이 자라기도 전에 서둘러 일을 하러 나와야 했다. 힘에 겨워 죽고 해충의 침입에 죽어갔다는 것이다. 꿀벌이 살 수 없는 곳에서는 인간도 살 수 없다고 한다. 꿀벌이 인류를 위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수분을 하는 것이다. 꿀벌의 활동에 의해 인류가 먹고 있는 작물 중 70%가 꿀벌의 수분 활동을 매개로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의 식량안보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이상기후로 생물체들이 사라지거나 COVID-19 같은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또한 국가 간에 무력분쟁으로 인류는 위협 당하고 있다. 우리의 지구는 불안하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맑은 물이 흐르는 천변엔 노란 가을 국화가 산뜻하다. 잔잔하게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도 좋다. 서너 살쯤 보이는 아기가 엄마, 아빠 손을 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이 애틋하고 사랑스럽다. 아기가 기분이 좋았던지 통통 뛰기도 하고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가던 길 멈추고 쪼그리고 앉아 무엇인가를 들여다보기도 했다.

풍경이 아름답다. 평화롭다.

이런 곳에 어떻게 수많은 폭탄을 떨어뜨릴 생각을 하는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급습했다는 소식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도 어느덧 일 년이나 되었다. 국가 간의 무력 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더하여 지구의 한쪽에선 지진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 되었다. 지구는 지금 혼돈의 시간 속에 있다.

‘아무리 기어 올라와도 넌 나를 타고 넘을 수 없어’

너와 내 안에는 수많은 벽들이 존재한다.

메꽃처럼 태생이 넝쿨을 뻗으며 살아가야 하는 것은 무엇이든 바로 설 수 있는 지지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무슨 일이든 상황에 따라 생각하는 방향에 따라 해석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같은 장소, 테두리 안에서도 한곳에 뿌리를 두고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서로의 안위를 위해 인내하며 대화로 풀어내며 협력하여 각자의 벽을 스스로 허물 수는 없을까. 착잡해지는 마음에 하늘을 우러른다. 푸른 하늘에 구름한 점 없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로 새 한 마리 자유롭게 날아간다.

‘너에게도 벽의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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