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백성혜 한국교원대 교수 

인구 절벽 시대에 다문화 사회를 받아들이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이제는 거리에서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흔한 일이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아직도 한국 사람이 아니면 마음에 거리가 있다. 외국인이 한국말을 유창하게 해도 왠지 그들이 우리와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에서 쿰다인문학이라는 생소한 학문을 알게 되었다. 쿰다인문학은 제주도 고유한 문학인데, 제주도에 외지인들이 많이 오면서 이런 독특한 문화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제주 사람들은 외지인이 마을에 정착하려고 들어왔을 때 적극적으로 환대하거나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외지인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하다 왔는지 물어보지 않는 것이다. 그걸 '드르쌍 내불멍'이라고 한다. 이러한 제주 사람들의 외지인에 대한 태도 때문에 외지인은 제주 사람들을 배타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새로운 사람이 왔는데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지인에 대한 노골적인 관심은 역설적이게도 외지인을 타자화하는 방법이 된다. 관심을 가지면서 너는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각인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지인에 대한 적극적 관심은 그에 대한 무의식적인 공격일 수 있다.

내가 어느 장학 재단에 심사를 갔을 때, 장학금을 신청한 학생 중 외국인이 있었다. 모습은 외국인이었지만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을 보니, 한국에서 나고 자란 것 같았다. 물어보니 부모님 중에 한 분이 외국인이었다. 이 재단에서는 심사 과정 중에 장학금 신청자 2명을 짝지어 서로를 소개하도록 하는 절차가 있었다. 그런데 외국인 학생과 짝을 되었던 한국인 학생이 외국인 학생을 소개하면서 그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소개하지 않았다. 소개가 끝나고 왜 외국인 친구가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지 않았느냐고 물어보자, 그가 불편해할까 봐 일부러 물어보지 않았다고 했다. 외국인 학생에게 그런 질문이 불편하냐고 묻자, 그는 그렇다고 답하면서 자신을 한국인으로 바라보아 주었으면 좋다고 말했다. 외국인 학생과 짝을 이룬 한국인 학생은 쿰다인문학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제주 사람들이 외지인에게 '드르쌍 내불멍'을 하는 이유는 남의 도움 없이 정착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마음 때문이다. 물론 도움을 준다면 더 빨리 정착할 수도 있지만, 도움을 받고 정착하는 경우에는 의존적인 태도가 생길 수 있다. 그러면서 마을에서 서열이 낮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간섭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자연스러운 정착을 하게 되면 그는 동등한 서열을 가진 마을 사람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제주 사람들은 외지인을 빨리 마을 사람으로 인정하려는 성급함 대신, 기다려주는 마음을 통해 더 견고하게 마을 사람으로 정착하기를 기다리는데 이를 '드르쿰는다.'라고 말한다. 외지인이 마을 사람으로 정착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고유성을 가지고 마을의 일원이 된다. 이를 '궨당'이 된다고 한다. 

이러한 개인의 고유성을 제주 사람들은 인정하고 존중한다. 그리고 주변 환경에 의해 외지인들이 제주 주민들의 행동을 따라하면서 동질화되려고 노력해야 한다면, 이는 오히려 외지인에 대한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제주 사람들이 외지인을 받아들이는 생활양식인 쿰다 문화는 다문화 사회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품격 높은 태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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