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아침에] 김영애 수필가

멧돼지가 도심에 출몰했다는 뉴스를 자주 접하곤 하였다. 멧돼지가 도심을 유유히 걸어 다니다 사람들이 놀라는 바람에 당황한 멧돼지도 덩달아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을 tv화면으로 보았다. 굶주림에 먹이를 찾아 도심까지 내려와서 헤매는 모습이 안타까웠었다. 멧돼지는 단지 먹이를 구하려고 출몰했을 뿐이지 사람을 해치지는 않는다. 사람이 먼저 해치지 않는 한 먼저 공격을 하지 않는다. 겁에 질린 멧돼지가 포획되거나 사람의 손에 의해서 사살되는 모습은 눈 뜨고 못볼 일이었다,

그런데 요즘 tv뉴스 화면에는 도심의 번화가에 멧돼지가 아닌 사람 괴물들이 자주 출몰을 한다. 문득 내가 지금 좀비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나 싶을 정도로 혼비백산한 사람들은 괴물을 피해서 살려달라고 외친다. 공포 속에 달아나던 무고한 사람들 중에는 괴물이 휘두르는 흉기에 무참히 목숨을 잃기도 하고 회복이 불가한 치명상을 입는다. 수갑을 찬 채로 고개를 숙인 괴물은 그저 평범한 이웃집 청년의 모습이다. 짐승처럼 혼자 웅크리고 있던 루저 청년들이 어느 날 갑자기 괴물이 되어서 도심으로 출몰을 한다. 사람이 제일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다.

물질 만능과 일등만 존중받는 사회에서 낙오가 되는 젊은이들은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마음에 병을 앓으면서 자기만의 방문을 굳게 걸어 닫고 살게 된다. 능력도 없고 가진 것도 없어서 어딜 가도 인정받지 못하고 존중받지 못한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사회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만을 키워가다가 세상을 향해서 무분별한 칼을 휘두른다. 인공지능 AI와 잘난 사람들이 판을 치는 세상 속에서 병들어가는 어두운 한 면을 보게 된다. 한때 그들의 부모들도 애지중지하며 내 자식이 최고다! 라고 엄지척을 하면서 키웠을 거였다.

요즘 교사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이 많았다. 흡사한 문제로 마음고생을 하던 일이 떠 올라서 며느리에게 자주 안부 전화를 하게 된다. 제대로 참교육을 할 수 없을 만큼 학교 교육 현장은 무너졌다는 며느리의 고충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학습 분위기를 해칠 만큼 삐뚤어진 아이를 바로 잡으려고 훈계를 하면 돌아오는 것은 학부모의 원망과 징계라고 하니 어느 교사가 제대로 된 참교육을 할 수 있을까!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인성 교육은 이미 부모로부터의 가정교육에서 기본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안하무인으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통제가 안 되는 교실에서 교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마음공부는 시키지 않고 숫자와 외국어로 머리만 키워서 학교에 보냈으니 웃자란 콩나물이나 다를 바가 없다. 내 자식이 최고이고 일등이기만을 바란다. 그렇게 괴물들은 키워지고 있었다.

유명한 신부님의 강의가 생각난다. 아이가 일찍 말문이 트이고 글자를 터득하면 천재라도 태어난 줄 알고 진짜 천재로 키우고 싶어서 우유도 아인슈타인 우유만 먹인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서울대학교에 들어가길 바라는 염원으로 서울우유로 바꿔서 먹이다가 중학교에 갔는데 서울대를 가기에는 터무니가 없는 성적이라서 연세대라도 가면 좋겠다는 바램으로 연세우유로 바꾼다.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서울에 있는 대학이라도 가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으로 건국우유로 과감하게 바꾸게 되었다. 고3이 되자 지방에 있는 대학이라도 갔으면 하는 마지막 꿈으로 우유를 저지방우유로 바꿔서 먹이게 되었다는, 우리나라 부모들의 잘못된 교육관을 풍자한 강의였다.

공부만 잘하는 자식, 최고만을 주장하는 엄마들의 기대를 따라주지 못하는 자식은 대화를 단절하고 방문을 굳게 걸어 잠그는 괴물로 커가고 있었다. 웃자란 콩나물들이 거친 땅에 건강한 뿌리를 내릴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일등교육 보다는 사람 교육이 절실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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