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이향숙 수필가

정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경과 어우러진 조각상들 사이를 지나자 경사면이 계단으로 설치되었다. ‘미술관 가는 길’이라는 아치에 눈길이 머문다. 관계자가 그곳은 천천히 둘러보라며 본관으로 안내한다.

공주의 풍경을 담아낸 그림이 관람객의 마음을 빼앗는다. 대작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 한 발짝 가까이 다가서기도 하고 물러서기도 하며 혼자 놀이에 빠진다. 다음 작품에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다시 좀전의 자리로 되돌아간다. 그리곤 물러서서 두 그림을 번갈아 본다. 낮과 밤의 풍경이 이토록 다를 수가 있을까. 청록색의 산 아래쪽으로 짙은 남색이 안정감을 주고 하늘은 하얀 뭉게구름 덕분에 더욱 청명하다.

그런가 하면 밤의 산은 짙은 남색으로 물들였고 검은색으로 명암을 주었다. 짙은 회색빛의 하늘은 별이 쏟아지고 있어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가 연상된다. 오염되지 않은 작가의 고향에 대한 애정은 깊은 색채로 담겨있다. 걸음을 옮길 적마다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탄성을 감추지 못한다. 다행인지 아쉬움인지 한산한 미술관을 독차지하고 장대한 작품들 사이를 산책하기에 그 걸음은 2층으로 3층으로 오르내린다.

본관을 나와 정원을 찬찬히 둘러보고 있을 때 낙엽을 쓰는 노인이 ‘작은 전시관’ 쪽으로 눈길을 던진다. 눈길을 따라 들어가자 중년 여인이 서너 평 남짓한 공간에서 한참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내일부터 전시하지만 들어오라며 자리를 내어 준다. 소박한 전시 공간에서 향기가 너울댄다.

정원에서 보았던 ‘미술관 가는 길’도 작품이 되었다. 누구든지 그 길을 걸어 올라가 아치를 지나가면 인생 고개 중 한 가지쯤은 시원하게 정리될 것만 같다. 모네의 ‘지베르니 부근의 센 강변’이 떠오르는 그림 앞에서 멈추어 선 내게 그녀가 다가온다. 반고흐의 작품들처럼 해바라기와 꽃이 피어있는 정원을 지나는 그림들 속으로 여인이 멈추어 선다. 본인이 작품을 그려 낸 화가란다.

영광스러움에 머리를 숙였다. 그녀는 이곳 아카데미에서 4년간 수학했단다. 짧은 기간에 이토록 그윽한 그림을 탄생시키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내게 그림을 좋아하는 것 같다며 함께 그리기를 권한다. 공연히 가슴이 두근댄다.

누군가의 상상력에서 건물이 지어지고 나무가 심어졌으며 호수가 만들어지고 조각상들이 자리를 잡은 것만으로 하나의 세상이 만들어졌다. 그곳에는 체험하는 어린이가 창의적인 미래를 덤으로 얻어 갈 것이고 취미로 그림을 배우는 노인의 삶은 조금 더 윤기가 흐를 것이며 자녀들에게도 빛나는 어버이로 남을 것이다. 당장은 아니지만 일터에서 물러나게 되면 한 번쯤 도전해 보고 싶은 분야이다. 소질이 받쳐주지 않겠지만 취미로야 문제가 되겠는가. 우연한 만남은 인연을 낳고 훗날까지 상상하게 한다.

미술관은 공주시의 임립미술관이다. 한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화가이며 교육자인 임립선생이 1997년 창립했다. 조금 전 낙엽을 쓰는 노인이 바로 관장님이다. 현재는 전시와 창작아카데미를 운영하며 공주시의 문화를 선도한다.

아쉬움으로 정원의 가장자리에서 미술관의 풍경을 둘러본다. 작은 호수가 있어 산책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계절마다 색을 바꾸는 풍경이 가늠은 되지만 낙엽이 물드는 계절을 지나 눈이 내리는 날에도 누리고 싶다. 꽃이 피는 계절은 또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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