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시평] 김희한 수필가

‘지금의 나는 주변의 모든 것에서 물들어서 된 것이다.’ 어느 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한 뼘 초록색 벼가 흙과 물과 해와 바람과 또 그 무엇이 도와서 황금빛이 된 것처럼, 줄기 하나 땅에 몸을 내렸는데 붉은 흙에서 고구마가 줄줄이 나올 때부터 알았다. 지금의 나도 바람과 해와 밤과 태풍 외에, 내 곁에 왔다 간 모든 이로부터 물들었다는 것을. 오늘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았다. 가을 나들이 겸 지인의 밤밭에 가잔다. 하던 일 다 밀어두고 손바닥 탁탁 털면서 대답했다.

“좋죠.”

여름내 온 비로 단장을 했는지 가을 산이 참 곱다. 차창을 열어 신선한 바람도 들이고 꽃잎 하늘거리는 코스모스도 보았다. 유유상종이라 했던가. 오래 입어 늘어진 속옷이 편하듯 오랜 친구는 그냥 좋다. 더구나 긍정을 양념처럼 넣어 대꾸하는 친구는 한겨울에 두툼한 외투를 입은 것처럼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유튜브 때문에 고민하던 30분 전의 나를 생각했다.

유튜브를 시작한 지 4년이 되었는데 구독자는 생각만큼 많이 늘지 않았다. 시작할 땐 영상으로 된 책 하나 만든다는 소박한 생각으로 했지만, 그래도 많은 이와 소통하면 좋겠다는 욕심이 든 것도 사실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독자들이 좋아할까 생각하면서도, 내 한계가 아닌가 하는 불안도 일었다. 왜 지금 타고르의 시 ‘기탄잘리’가 떠오를까.

‘여행이 끝나간다고 생각했습니다./내 힘이 한계에 이르렀고/내 앞의 길은 가로막혔으며/음식은 소진되어/이제 조용한 어둠 속으로 물러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하지만 나를 향한 당신의 끝을 모르는 의지를 발견합니다./낡은 언어들이 혀끝에서 소멸하고/새로운 선율들이 심장에서 솟구칩니다./그리하여 낡은 길들이 자취를 감추는 곳에/새로운 나라가 황홀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인도의 시성인 타고르도 한계를 느꼈고, 길은 가로막혔으며, 음식은 소진되었던 때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새로운 선율들이 심장에서 솟구치고, 낡은 길들이 자취를 감추고, 새로운 나라가 황홀한 모습을 드러낸단다. 좌절을 느꼈던 내가 가을 햇살과 신선한 바람과 편안한 친구가 있으니 금방 황홀하다.

밤밭 주인은 밖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금방 찐 밤과, 금방 깐 날밤과, 나물로 준비한 밥을 지어놓고 먹으란다. 먹고 먹어도 또 내놓는다. 맛난 밥을 물린 후 밤을 줍는다. 한 사람은 발로 알밤을 비벼 꺼내고, 한 사람은 줍고, 한 사람은 빈 밤 집을 모은다.

밤 다 줍고 나무 그늘에 앉았다. 햇살이 밤나무 잎 사이로 떨어진다. 아이들 이야기와 경제까지 이야기는 밤나무 잎 사이를 지나는 바람처럼 이리저리 내닫는다. 돈 버는 일에는 재주가 없지만, 밥은 굶지 않아서 늘 고맙게 생각했다. 배는 부른데 따스한 햇살이 등에 오르자, 눈꺼풀이 사르르 내린다. 그 순간 타고르의 또 다른 ‘기탄잘리’가 꿈속처럼 스친다.

당신은 나를 끝없는 존재로 만들었습니다./그것이 당신의 기쁨입니다./이 부서지기 쉬운 그릇을 당신은 비우고 또 비워/언제나 새로운 생명으로 채웁니다./이 작은 갈대 피리를 언덕과 골짜기로 가지고 다니며/당신은 그것에 끝없이 새로운 곡조를 불어넣습니다./신의 불멸의 손길이 닿으면/내 작은 가슴은 기쁨에 넘쳐 한계를 잊고,/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언어들을 외칩니다./당신이 주는 무한한 선물을/나는 이 작은 두 손으로밖에 받을 수 없습니다./영원의 시간이 흘러도 당신은 여전히 채워 주고 있으며/내게는 아직 채울 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선선해진 바람에 풀이 눕는다. 이제는 갈 시간이다. 한가득 밤을 채운 봉지가 제법 무거웠다. 소금도 한 자루 얻었다. ‘누군가에게 소금 같은 존재도 되어야 할 텐데.’라고 생각하다가 얼른 생각을 접었다. ‘그냥 나답게 살자. 살던 대로.’ 손을 흔든다. 바람에, 나무에, 열심히 씨를 익히는 풀들에, 밤밭 주인에게 손을 흔들어준다. 오늘도 잘 살았다. 가을도 하늘을, 땅을, 우주를 물들이며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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