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웅칼럼] 김진웅수필가

폭염 속에서도 반짝이며 푸르름을 자랑하던 나뭇잎들이 오색 단풍으로 수놓으니 단풍 여행 차량으로 고속국도가 붐비고, 산책길에도 한 잎 두 잎 떨어져 낙엽이 되어 나뒹구는 것을 보며 가을이 왔음을 실감한다.

자연계에 사계절이 있듯이 우리 인생에도 사계절이 있다. 흔히 계절의 상징을 색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봄은 푸른 빛깔, 여름을 붉은 빛깔, 가을을 흰 빛깔, 겨울을 검은 빛깔로 표현한다. 봄을 청춘(靑春·계절상 봄을 가리키는 말로, 생애에 원기가 왕성한 젊은 시절을 가리킴), 여름을 주하(朱夏·음력 5월, 곧 여름을 달리 이르는 말), 가을을 백추(白秋·가을을 달리 이르는 말), 겨울을 현동(玄冬·겨울을 가리킴)이라는 말로 각 계절을 나타내는 말이 되었다.

자연계의 사계절과 같은 계절이 인생에도 있다. 자연계와 인생이 다른 점은 자연계의 사계절은 매년 되풀이되는 것이지만, 인생의 사계절은 한 번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인생무상(人生無常)과 다른 사람 사랑 못지않게 ‘나를 사랑하기’가 절실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지난 7월, 어느 신문에서 백영옥 소설가의 ‘나를 사랑하는 법’을 감명 깊게 읽은 감동을 되새겨본다.

변화의 속도로 불안이 디폴트값이 된 시대에 귀중한 삶의 기술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거꾸로 생각하는 것이다. 가령 나를 ‘의도적으로’ 손님처럼 대접하고, 일 년에 몇 번 꺼내 쓰지 않는 가장 좋은 손님용 찻잔을 꺼내 나를 위해 일상적으로 쓰는 것이다. 혹여 깨질까 봐 쓰지 못하는 걱정은 ‘나 자신’을 귀한 손님으로 환대하는 마음으로 덮는 것이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건강, 미모, 명석함도 언젠가는 손님처럼 내 몸을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박은옥의 노래 ‘양단 몇 마름’에는 “옷장 속 깊이 모셔 두고서/생각나면 꺼내서 만져보고/펼쳐만 보고, 둘러만 보고/석삼년이 가도록 그러다가/늙어지면 두고 갈 것 생각 못 하고…”라는 가사가 나온다. 예전 우리 할머니 세대들은 대체로 이런 삶을 사셨다. 보공(補空)은 관 속의 망인이 움직이지 않도록 채워 넣는 것을 말하는데 결국 가장 아끼던 좋은 옷은 보공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 지금의 형편껏 자신을 사랑하는 일은 중요하다.

필자도 선물 받은 값비싼 구두를 아끼느라 신발장 깊숙이 모셔놓고 한동안 잊다가 얼마 전 꺼내보니 뒷굽이 떨어지려고 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자전거도 오래 타지 않으면 타이어가 트거나 삭고, 창고에 넣어둔 호미도 오래 쓰지 않으면 벌겋게 녹이 슬고, 승용차도 자주 타지 않으면 방전될 염려도 있고……. 오죽하면 “아끼다 똥 된다.” “석인성시(惜吝成屎)” “동선하로(冬扇夏爐)”란 말이 있을까. 내 이야기는 아닌지 성찰하며 반추해 본다.

농부들도 대체로 품질 좋은 농산물은 판매하거나 자식들에게 보내고 정작 농사를 지은 주인공은 덜 좋은 것을 먹지 않는가. ‘주인공’ 대신 무심코 ‘장본인’이라 쓸 뻔했으니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겠다.

‘장본인’이라는 말은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아무개는 방송언어에 무관심한 풍토에 젖어있는 이들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한 ‘장본인’이다.” 이 말대로 한다면 이 아무개 씨는 사람들이 방송언어에 관심을 두도록 한 몹시 나쁜 사람이 된다. 즉, 말이 안 되는 말이다. 아무개 씨가 한 일은 올바른 일이다. ‘장본인’은 ‘일을 꾀하여 일으킨 사람’으로 대개 바람직하지 않은 일의 중심인물을 말한다. ‘뇌물 수수 사건의 장본인’처럼. 위의 아무개 씨는 훌륭한 일을 한 ‘주인공’이다. 앞으로 좋지 않은 일의 장본인이 되지 말고, ‘교육 발전의 주인공’처럼 나도 좋은 일의 중심인물이 되고 싶다.

자아 존중감(自我尊重感) 혹은 줄여서 자존감(自尊感)은 자신을 존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라고 인식하는 마음을 말한다. 간단하게 말해서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냐는 의미이고, 일상적 활용으로는 ‘자신을 사랑하는 감정’ 정도로 사용된다. 복잡하고 바쁜 일상에서 이리저리 삶에서 구겨진 내 자존감을 다독이는 ‘나를 사랑하기’는 나를 위해주고 지켜주는 삶의 보루(堡壘)이고, 든든한 친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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