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박성규 한의학 박사·예올한의원 원장

국민연금 개혁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기금 고갈이 목전에 다다라 더 많이 내고 더 적게 받도록 개선한다고 한다. 국민연금 개혁은 해묵은 과제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거론되었으나 표심을 우려하여 대체로 회피해왔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실시한 정부는 탄핵까지 당했으니 정치권의 두려움을 짐작할 만하다.

초고령화 사회, 인구절벽 등 급변하는 환경은 더 이상의 방치를 어렵게 하고 있다. 지속성을 위해서는 개선이나 개혁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기초연금 등과 비교하여 형평성 문제도 대두되기에 합리적 방안을 찾는 것이 쉽지는 않다. 안타까운 것은 언제부터인가 정치권에서 말하는 ‘개혁’이 국민의 부담을 증가시키고 혜택은 줄이는 방안을 이르는 말로 둔갑했다는 것이다. 언어 왜곡이 일상화되기는 했지만 ‘개혁’이란 말처럼 국민을 우롱하는 단어도 없는 듯하다.

조선의 공물제도는 많은 폐해를 낳았다. 조선 중기 율곡 선생이 대공수미법을 주창한 이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김육 선생의 헌신적 노력으로 숙종에 이르러서야 대동법이 전국적으로 실시되었다. 대동법 실시로 백성들의 부담은 현저히 줄고 조세 수입은 늘어났다. 더불어 상공업 발달을 촉발하여 양란과 광해군의 궁궐 공사로 피폐해진 조선 경제를 살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꺼져가던 조선 왕조가 회복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영정조의 문화 부흥을 이루는 발판이 되었다. 개혁이란 모름지기 백성의 부담을 줄이고 혜택은 늘리는 방안이 되어야 지속 가능한 부국강병책이 될 수 있다.

국민연금의 개선 혹은 개혁이 필요하다는 상황은 이해되나, 건강보험과 같이 국민 부담만 가중하는 방안이라면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철저한 자기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동안 배임, 횡령, 제 3자 뇌물, 방만한 경영 등 다양한 의혹이 제기되었다. 대부분 준조세가 역대 정권의 금고처럼 유용되고 있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었으나 이에 대한 조사나 수사는 미흡했다. 기금 운용과 관련된 부정부패는 처벌과 상관없이 철저히 조사되어 재발 방지를 위한 시스템이 확보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전 세계에서 수위를 다투는 연기금을 운용하고 있는데 이에 합당한 실적을 내고 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금리 대비 연금 운용 실적을 역대 정권별로 평가하여 적어도 정치적 심판만이라도 해야 한다. 기금의 규모로 보아 민간보다 우월한 실적을 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문성이 부족하여 자체 운용 실적이 낮다면 외부에 위탁하여 운영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현재 국민연금 공단은 전국에 112개소 지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7,149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첨단 정보기술을 구현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규모의 조직과 인력이 필요한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석유파동 이후 국민의 호주머니를 털어 축적했던 유가안정기금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실을 거울삼아 기금의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운용 시스템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다. 누수되는 것을 최소한 한 연후에 국민의 부담과 혜택에 대한 개선 방안을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다면 끊임없이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부담만 가중시키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주지하듯이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이다. 하지만 방만한 연기금 운용으로 국민 부담만 가중한다면 국가 제도로서의 존립에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과잉 진료와 누수를 조장하는 각종 제도를 남발하여 건강보험 기금을 탕진한 후 대책이라고 시행한 것이 건강보험료 인상뿐이었다. 조세나 준조세가 과도해지면 국가 경제와 국민의 생활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도 건강보험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자체 개혁부터 실시한 연후에 국민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예기’에 기록된 호랑이보다 사납다는 가혹한 정치는 독재를 말한 것이 아니라 과도한 조세를 의미한다. 모처럼 다시 제기된 국민연금 개혁이라는 화두를 보면서 이번에는 제대로 된 ‘개혁’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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