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서 동굴벽화 발견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동굴벽화로 추정되는 벽화와 新石器(신석기)시대 初期(초기) 우리의 조상들이 동굴 거주를 했음을 입증하는 놀라운 사실이 丹陽(단양)의 동굴 탐사에서 밝혀져 學界(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4·5 양일간에 걸쳐 忠北(충북) 丹陽郡(단양군) 大崗面(대강) 고수리 ‘까치산’에 있는 세칭 박쥐동굴(길이 360m) 탐사에 나섰던 韓國(한국)동굴학회(회장·박노식 경희대박물관장)의 考古學分科委(고고학분과위) 金基雄(김기웅) 교수(考古學·建大(건대))팀에 의해 5일 상오 7시 반경 發見(발견)된 이 동굴벽화는 동굴 입구에서 6m 안쪽 왼편 석회암 표면에 물고기(또는 나뭇잎) 모양의 길이 64㎝·너비 34㎝ 크기의 타원형 刻畵(각화)인데 이를 발견한 金基雄 교수팀은 이 그림은 紀元前(기원전) 2~3천년 경의 동굴벽화로 추정하는 이유를 ①壁畵(벽화)가 그려져 있는 석회암의 주위에서 조각도로 쓰였을 것으로 보이는 이질적인 돌도구가 발견되었다는 점 ②壁畵 부근의 석회암에서 볼 수 있는 地(지)각형성과는 전혀 다른 曲線(곡선)과 인위적인 타격에 의해 强·弱(강약)과 불규칙에 의한 線과 흠이 뚜렷하다는 점 ③그 線은 그 시대 사람들이 ‘샤머니즘’적 표징으로 즐겨 새긴 물고기(또는 나뭇잎) 형태에 가깝다는 점과 동굴 주거가 확실할 때 壁畵가 새겨질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할 것이란 점을 들고 있다. (하략) <8834호·1973년 11월 6일자 1면>

 

50년 전 충청일보 기사에서 말하는 ‘박쥐동굴’은 고수동굴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동굴벽화로 추정되는 것을 발견했다고 하니, 특종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고수동굴과 관련된 내용을 찾아봤는데, 고수동굴의 벽화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팩트를 체크하기 위해 한국 고고학계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는 이융조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과 통화했다. 그는 두루봉동굴(청주시 문의면)과 수양개 선사유적(단양)을 탐사해 고고학적 성과를 이룬 바 있다.

이 이사장은 ‘고수동굴 벽화’는 처음 듣는 말이라고 했다. 아마도 한국 최초로 발견된 벽화라고 추정했던 일련의 내용이 학계로부터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없던 일’이 된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그 당시 특종이 이후 오보가 된 셈이라고나 할까.

단양 고수동굴은 천연기념물 제256호로 지정돼 있다. 4억5000만년 동안 생성돼 온 석회암 자연동굴로 면적은 1만8210평, 현재 개방된 길이는 1.7㎞, 입구 높이 50m, 폭 5m이다. ‘금마굴’, ‘까치굴’, ‘박쥐굴’, ‘고습굴’ 등으로 불려왔다. 남한강과 금곡천의 합류지점 부근인 등우봉 서쪽에 있다.

이 동굴의 첫 탐사는 1973년 10월 한국동굴학회의 조사단에 의해 실시됐는데, 그때 동굴 입구 부근에서는 타제석기와 마제석기가 발견됐다. 한강 연안 가까운 곳에 있고, 동굴입구가 남향으로 돼 있는 점으로 보아, 선사 시대의 주거지로 이용됐다고 추정된다.

동굴 내부에는 수호신으로 모시는 사자상의 기암을 비롯해, 웅장한 종유폭포(鍾乳瀑布)를 이루는 유석(流石), 선녀탕(仙女湯)이라 불리는 석회화단구(石灰華段丘)의 동굴소(洞窟沼), 7m 길이의 종유석과 석순·석주 등이 있다.

1976년 개발해 관광 동굴로 개장하고 있으며, 자연 학습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1982년 미개발된 동굴 상층부가 새롭게 발견됐고 1983년에는 2개의 동굴입구를 갖게 됐다. /김명기 편집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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