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시평] 김윤희 수필가·전 진천군의원

가을 햇살이 유난히 따사롭다. 이상설 선생의 기념관에 볼일이 있어 방문하던 날이다. 선생의 생가 옆,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공터에서 마을 어르신 서넛이 철퍼덕 앉아 용구새를 틀고 있다.

용구새는 초가지붕에 이엉을 인 다음 용마루에 얹어 마무리하는 데 쓰인다. 표준말로는 용마름이지만 충청도에서는 용구새라는 말에 더 익숙하다. 어릴 적부터 그리 들어왔기 때문이다. 토담 위에서도 흔히 보아 왔던 정겨운 모습이다. 까마득히 잊고 있던 기억 한 자락이 아지랑이로 피어오른다. 반가운 마음에 사진 몇 커트 찍어 ‘이상설 역사문화전수학교 단체방에 올렸다.

“추수하고 볏단 생겨서 지붕 보수공사 하나 봐요, 너덜너덜하더니만.” “용구새라는 말, 처음 들어 봐요” 각각의 반응이 세월을 말해 주고 있다.

숭렬사 옆에는 보재 선생의 순국 100주년을 기념해 일기 시작한 이상설 기념관 건물이 웅장하게 들어섰다. 한창 마무리 작업에 들어가 있을 무렵이다. 생가 지붕 한 귀퉁이가 무너져 내렸다. 짚으로 인 이영이 삭아 문적문적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한마디씩 했다. 기념관만 신경 쓰고 옆에 있는 생가는 방치하는 것 아니냐며 관계 기관에 여럿이 민원을 제기한 모양이다. 해마다 가을이면 새로 지붕을 인다며 올해도 벼 타작이 끝나는 대로 바로 할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드디어 동네 어른들이 용구새를 틀고 있다. 마당 가득 널려 있는 볏짚 위로 가을 햇살이 밝은 얼굴로 내려앉는다. 촌로의 투박한 손으로 매초롬하게 엮어낸 용구새가 예술품이다. 구불구불 용 틀고 앉아 있는 폼이 금방이라도 용트림하며 불끈 일어설 듯하다. 생동감이 느껴진다. 참 이쁘게 만든다고 하니 “솜씨야 문화재급이지” 하신다. 평생 짚을 만지며 살아서 짚으로는 못 하는 게 없다고 신바람을 낸다.

가마니, 멍석, 둥그미, 삼태기 등 크고 작은 생활 용구는 물론이고, 짚신, 달걀꾸러미, 닭둥우리도 짚으로 엮어 사용했다. “아무리 잘 만들면 뭐하나,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찾는 사람이 없는데. 이 일도 우리 세대까지 만여!” 푸념처럼 내뱉는 어르신 말이 귓전을 울린다. 귀한 솜씨도 누군가 이어받지 못하면 그냥 사장되고 마는 것이다.

농경문화에서 산업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문화 자체가 바뀌었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를 활용하여 손수 만들어 쓰던 것들을 대다수가 공장에서 찍어내기 때문이다. 애써 손으로 만들 필요가 없어졌다. 어릴 적 보았던, 불과 50여 년 전까지 사용했던 일상생활 용품이 어느새 민속박물관에서나 겨우 볼 수 있게 됐다. 급격한 변화 속에 잊혀지고 사라져가는 문화가 되어 버렸다.

문득 막내 아이 초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학교에서 아이와 부모의 작품 전시회가 있었다. 무얼 만들어 보낼까 고민하다가 나는 달걀꾸러미를 만들고, 남편은 닭 둥우리를 만들었다. 닭 둥우리는 용구새 트는 방법과 같다. 적당한 길이로 엮어 네 귀퉁이는 새끼를 꼬아 끈을 만들고 뒤집어 매달면 된다. 남편이 친정아버지에게 배워서 만든 것이다.

전시회 날 학교에 가서 전시된 물건들을 둘러보았다. 우리 집 작품도 전시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보고도 별 반응이 없다. 그저 교과서 어디에선가 본 옛날 물건에 불과했을 터다. 반면, 선생님과 학부모들은 어디서 이런 귀한 물건이 나왔냐며 반색한다. 그들에게는 생활 속에서 익은 추억이 머물러 있기 때문이리라.

아주 가끔은 볏짚에 묻어 있던 우리의 삶과 추억을 꺼내 보며 내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볼 일이다. 그 속에 녹아 있는 여유를 발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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